불콰하게 술을 마셨지만, 역시나 많이 걸었던 탓에 일찍 잠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피로가 그럭저럭 풀렸는지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체크아웃을 한 후에 9시 25분 기차를 타러 사가역으로 갔다.
역시나 구글에서 제시한 기차표값보다 내가 끊은 기차표값이 더 쌌다. 그건 역시 지정석이 아니라 자유석이라서.

시로이(하얀) 카모메(갈매기) 열차 라인인데, 6냥(両) 편성일 경우에는 4호칸. 자유석이 3~6이었던가...

시로이 카모메라고 하더니만 진짜 하얀 기차네. ㅎ...
역시나 비싼 일본 기차 특성 상 1시간 20분 가는 이 열차의 비용은 3천 엔 중반대... 거의 우리나라에서 대구쯤 가는 KTX 비용... 하지만 끊을 때에는 3천...이라는 단어에 '별로 안비싸네...'라고 또 착각을... 그리고 이렇게 나름 장거리 두 번 타는 거에, 타쿠시까지 왕복하는 등 열차로 주로 움직일 줄 알았으면 JR 큐슈 패스를 사는 게 나았을래나... 대신 즉흥적으로 움직인 면도 있어서 그때 그때 검색하다보니 안맞았을 수도.

요 코스로 기차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움직였다.
나가사키역에 내려서 역사 내에서 시내 전차 1 Day Free Pass 를 이틀 치 샀다. 하루 종일 전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걸로, 500엔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거 안사면 한 번 탈 때마다 120엔인가를 낸다. 그러니까 대략 하루에 5번은 타야 본전은 뽑는다는 얘기. 가격 얼마안해서 사기는 했는데 생각해보면 본전 뽑기 쉽지는 않다. 걔들도 손해보지 않는 적정가 책정하기 위해서 고민 많이 했겠지. ㅎ...

나가사키역에서 내려서는 아니고, 숙소로 가는 전차를 타기 위해서 2층 육교로 올라와서 찍은 사진.

나가사키 전차의 나가사키역에서의 모습. 1호선 라인임. ㅎ...

나가사키 토요코INN 이 있는 고토마치역(五島町駅)... 토요코인은 역시나 이 근처에 있다. 체크인을 해놓고는 캐리어만 맡긴 후에 일단 식사를 위해서 나가사키역으로 컴백. 그러니까 이 동네 맛있는 가게는 아직 잘 몰라서 나름 동네에서 큰 나가사키 역사(驛舍)에 있던 식당가로 움직였다.

우동 밑 규동 정식. 딱 맛도, 양도 무난한 스타일의 점심. 대략 800엔 정도였던 걸로 기억. 나름 배는 든든하게 채워줬다.
밥을 먹은 후에 처음으로 간 유적지는, 나가사키 역 바로 옆에 있는 니시자카(西坂) 언덕에 있는 26인의 순교 성지였다. 센코쿠 시대의 일본을 통일시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난리를 피우는 와중이던 1597년,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킬 싹을 제거하기 위해서 스페인에서 온 선교사 6명과 일본인 신자 20명을 한꺼번에 처형한 지점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니시자카 언덕이 예수께서 처형된 골고다 언덕과 비슷하다 하여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하길 원했다고도 한다.

1862년 이들은 성인으로 시성되었고, 시성 100년째인 1962년에 이 기념관이 세워졌다고 한다. 26명 중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3명이 보이는데, 이들은 실제로도 어린 순교자라고 한다.

26인의 성인 제단 오른쪽에는 성 필리피 교회의 모습이 보인다.

26 성인의 순교 박물관 근처에 보이던 작은 화분.

26 성인의 순교 박물관에 있던 형상.


위의 두 사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안내도. 순례의 길과 성과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일본어 해석이 미흡하여...
겉을 돌아본 후에 안으로 들어가는데, 안내인이 뭐라 얘기를 한다. 입장료가 있었던 것. 500엔이었다. 박물관에 왔는데 겉만 보고 가면 거시기 해서 500엔 (역시나 금액 스케일 판단을 잘못한 건 부정하지는 않겠다. 5천 원 짜리가 왜 동전이야. -_- )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사진 오케?' 라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

밖에서 봤던 26성인의 부조의 축소판... 반대로 오리지널일지도...

당시 선교사들이 종교를 전래하던 코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조각상

성 도밍고의 상...

나무로 된 메달에 새겨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그 무렵 유럽에서 일본과 우리나라를 생각했던 지도. 왼쪽 상단의 녹색으로 칠해진, 세로로 길쭉한 게 우리나라다. 일본은 큐슈(분홍색)와 시코쿠(청록색), 혼슈만(노란색) 그려져 있고, 홋카이도는 없다. 즉, 그들이 알고 있던 지식이 그 정도라는 거. 큐슈는 아무래도 서양애들과 많이 접촉해서인지 조금 더 정확하고 자세히 그려져 있다.

키리시탄(Christian)을 금하며 탄압하겠다는 포고령

마찬가지의 포고령.

순교자들의 그림과 순교 당시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



박해 당하던 신자들이 250년 간 지켜왔다는 눈의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픔에 잠긴 모습을 조각한 피에타 상


일본 센고쿠(戦国)시대부터 에도 시대(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통일한 시대)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며, 키리시탄인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의 조각. 수만 석의 영지를 포기하고 신앙생활을 택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키리시탄 추방령 때 가족과 함께 필리핀의 마닐라로 떠났다가 사망했다.


천사이던가, 성인이던가...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면 희생자들의 제단과 함께 신앙의 승리를 상징하는 형상들이 있다.

박물관 창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같은 일본의 카톨릭 신앙과 관련된 그림들이 있었다.


창가에 그려져 있던 스테인드 글라스 형태의 그림들. 몇몇은 당시의 일본 내 기독교 신자들을 그린 모습들이다.





일본인 순교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전 조선에서 태어난 카이요(조선인인데 남은 기록이 일본 기록인지라)는 절에서 승려생활을 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포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를 노예로 삼은 주인의 배려로 해방된 이후 예수회 선교사를 통해 세례를 받고 개종했는데, 막부에 의해 모진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선교사를 숨겨줬다고 잡혀온 고이치 디에고와 깊은 우정을 나누다 함께 화형당했고, 이후 복자로 시복되었다.
그러한 둘의 사연은 한일 양국 카톨릭이 하나가 되기 위한 상징이 되기에, 이 비를 2016년에 세웠다고 한다.

순교 당하던 시절의 모습을 그린 그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떨어진 후, 우라카미(浦上) 천주당에 남아있던 가디언 엔젤의 머리 부분

예전 영주들의 크나큰 양산.

26인 순교자들의 언덕에 세워진 성 필립 교회

스와 진자에 가던 길에 있던 나카마치 성당. 에도시대 초기에 순교해서 1987년에 성인으로 시성된 '성 토마스 니시와 15명의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내부에는 안들어가봤... 안내 책자에는 10장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관련된 '미소의 십자가'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