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시에서의 첫째 날 밤... 토요코인에서 맥주 까면서 다음날 어디로 가볼까 고민 중... 온천으로 유명한 후루유(古湯)로 가서 1일 탕을 해볼까, 나무가 우거진 다케오(武雄)로 가볼까, 온천과 녹차밭이 많은 우레시노(嬉野)로 가볼까 고민하다 타쿠(多久)시로 결정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별 볼 일 없는 곳을 다녀온 듯. 고생만 직싸게 하고. ㅋㅋㅋ... 뭐... 5박 6일 중 하루 공칠 수도 있는 거지... 하면서 정신승리 중...
근데 원래는 사가 시내에서 이틀 정도 볼까 하다 '아니야, 사가시는 이틀까지 볼 거는 없는 거 같다. 그러니 기차타고 조금 멀리 가보자...' 해서 나가려는데, 다케오나 우레시노는 그러기에는 좀 멀어보여서 그나마 가까운 타쿠역으로 결정했던 것. 후루유는 버스타고 가는 거라서 귀찮았...

대략 10시 반쯤에 일어나서 뒹굴뒹굴거리다 타쿠시 가는 노선을 구글지도로 확인한 후에 사가역으로 나갔다. 사람이 기차표 끊어주는 창구에는 줄 서 있길래 과감히 노선도를 보고서는 460엔짜리를 무인 발권기로 끊었다. 제대로 타는 곳 선택했는지 몇 번이 아잉패드로 확인 후에 올라갔으나 가만 보니 반대 방향... 다시 내려와서 반대쪽 플랫폼에 가니 열차가 하나 있었다.

귀여운 한 냥짜리 열차. 승무원에게 타쿠시로 가냐고 물어보니 'OKay, Okay' 한다. 평일 낮 시간이고 동네도 한적한 곳이다 보니 사람도 별로 없이 가비얍게 앉아갈 수 있었다.
사가역에 도착했더니만... 닝기리 비가 오고 지럴이야... 귀찮아서 캐리어에 놔두고 왔더니만 꼭 이런 때에 비가 와요... 역 근처에 편의점에서 사볼까 했더니 편의점 자체가 없... 하아... 결국 비가 조금 약해진 다음에 그냥 쭉 걸어가면서 가게를 찾기로 했는데...

요렇게 생긴 다나카 상점이라는 구멍가게가 보여서 들어갔더니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시골 상점에서는 영어가 안통할 걸로 생각해서 일본어 사전으로 미리 우산은 카사(傘) 혹은 아마가사(雨傘) 라는 걸 외워둬서 할머니께 '아마카사' 라고 물어보니 '아... 아마가사...' 하시면서 허름한 비닐 우산을 하나 주신다. '잉? 이건 새거가 아닌데... 뭐 할 수 없지...' 하면서 일본어는 모르겠고, 'How much...' 하니 할머니가 '아... 오까네가... 어쩌고 저쩌고...' 하시면서 그냥 가져가라는 제스쳐다. '아, 그냥 가져가라는 뜻이구나...' 생각하고는 '아리가또'라고 인사드리고 나왔다. 따뜻한 시골인심이었다.

요런 우산이지만, 공짜로, 비 잘 피하게 해줬으니 이보다 더 좋은 우산이 어디 있겠음.
우산도 구했겠다, 시간도 12시쯤 됐겠다 일단 밥부터. 여행 책자에서도 추천하는 가게는 아무르(アムール)라는 카레집으로 결정. 카레 좋아하는 내가 (토요코인의 아침이 카레라이스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훌륭한 조식이 된다) 카레가 유일한 맛집이라는데 안가볼 수가 있겠음.

꽤나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지 않을까 싶은 가게 내부의 모습. 최소 80년대 혹은 그보다 더 거슬러 7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정도 됐지 않았을까 싶은...


왼쪽은 락교였던 거 같고, 오른쪽은 이치방 카레에서 봤던 그건데... 이름이 기억 안나네...

메인 메뉴 전의 소박한 샐러드

드디어 나온 돈까스 카레. 카레의 색이 하이라이스에 가깝기는 하다.

일본애들 자존심답게 두툼한 돈까스, 그리고 밥이 볶아져 나온 게 정이 있어 보인다. ㅋㅋㅋ
커피도 파는 가게이지만, 패스하고... 이제 본격 오늘의 관광...보다는 유적 탐사를... ㅋㅋㅋ...

보시다시피 타쿠역에서 가장 아래쪽의 타쿠세이뵤(多久聖廟)까지는 4Km 정도, 그러니까 성인 걸음으로 1시간 정도는 걸어야 하는데... 이노무 가이드 책에는 그건 빼먹었다. 지도도 아래쪽, 사각형 경로 부분만 나타나 있고, 나머지는 생략... 속았... 정말 이번 여행은 처절하게 걷는 걸로 점철되어 있다. 6시간은 기본으로 걸었던 듯...

타쿠 역 근처의 구조물. 철도 창고 같은 곳이었을까. 뭔가 웅장한데 담쟁이 덩쿨로 덮인 낡음이 인상적이라서 예술가인 척 찍어봤...

평범한 일본의 소도시는 이런 걸까. 나팔꽃이나 금잔화, 맨드라미가 우리네랑 다르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정돈된 게 다르다.

그러고보니 역사(驛舍)가 아닌 철로에 올라서 철길을 찍어본 건 처음이다.
가던 길에 보니 이런 공동 묘지가 있었다.

일본은 화장을 해서 그런지 무덤가가 마을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편이다. 이 역시 우리와는 다른 일본의 모습인 듯하다.

저 멀리 보이던 산에, 저렇게 푹 파인 자국이 있는 게 신기해서 찍어봤다. 홍수가 났을 때 산사태의 여파일까. 사가시도 큐슈에 있으니 오키나와만큼은 아니더라도 태풍과 홍수는 종종 겪었겠지.

이건 정말 우리나라의 들판과 다를 게 없었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멀리 보이는 구름에 덮인 산이 영험해 보였다. ㅋㅋㅋ... 구글로 뒤져보니 온나야마(女山) 아니면 하치만산(八幡岳)이지 싶다.

어제도 그랬지만 감나무가 반가워서... 집 양식 빼고는 역시 우리나라 여느 시골과 같다.

콩밭인데... 나는 논두렁의 자투리에 심어놓은 콩만 봤지, 이렇게 넓게 재배하는 콩밭은 처음이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구~~~
이 콩밭을 지나서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인 타쿠세이뵤에 가까이 왔다.

어린아이가 사는 집인지 색색의 장식이 예쁘다.

뭔가 숨겨진 정원이 있을 거 같은 집의 입구...

인상적인 무늬의 고양이가 보여서 한 컷~~~
세이뵤(聖廟)라는 것은 성스러운 사당이라는 뜻으로 공자를 모신 사당을 뜻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문선왕묘(文宣王廟) 혹은 문묘(文廟)와 같은 곳. 타쿠의 영주였던 타쿠 시게후미(多久茂文)는 유학에 밝았고 잘 통치하기 위해서 학문을 진흥시키려는 의도로 이 공자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1708년에 세워진 것인지라 일본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사당이라고 한다. 덕분에 수험생을 위해 빌어야 하는 때가 오면 합격을 기원하는 많은 손님들이 온다고 한다.

옛날 일본 영주답지 않은, 유학자 모습의 (그것도 중국식 모습) 타쿠 4대 영주 타쿠 시게후미(多久茂文)의 석상.

분명 10월 하순인데도 가을같지 않은 동네인데다, 오래된 건물과 비내린 모습이 겹쳐져 꽤 눅눅하다.




사가현 내의 오래된 나무(한 100개는 되는 듯?)로 관리되고 있댄다.
세이뵤 위쪽에는 도겐쇼샤(東原庠舎)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 역시 타쿠 시게후미가 만든 곳으로 일종의 기숙학원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가난한 마을이지만 교육을 통해서 마을을 발전시켜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후 메이지 시대에 일본 전기공학의 선구자와 석탄왕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세이뵤에서 언덕길을 올라가 도착한 도겐쇼샤. 구글지도에서는 숙박시설로 표시되어 있던데 일반 관광객이 묵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매우 고즈넉하다.




세이뵤와 도겐쇼샤 근처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넓은 주차장과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일본도 좋은 학교 가려고 노력 많이 하니, 철이 되면 이 세이뵤에 많은 사람들이 오겠지.

주차장 근처의 해바라기 밭. 키가 크고 꽃이 큰 해바라기가 아니라 가늘고 작은 해바라기였다.
그 다음에는 세이뵤 서쪽에 있는 타쿠 하치만 신사와 타쿠 신사, 그리고 세이케이공원(西渓公園)을 향해... 걸어갔...

가던 길 중간에 세워졌던 타쿠시의 역사 연표가 쓰여진 타일.

타쿠시와 사가현의 옛날 모습을 그린 타일
타쿠의 하치만 신사(多久八幡神社)는 1194년에 세워진 신사로 사가현의 중요 문화재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보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역시 안동 봉정사 극락전보다 더 오래 전에 세워진 목조 건물이라는 건데...

돌로 만들어진 도리는 오래되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기는 한데...

지키는 사람도 없이 한적한 모습이다. 아마 중간에 다시 재건립되었지 싶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더 찾아보든지 해야겠군. 그 외에 세 그루의 우뚝 선 나무들이 유서 깊다고 한다.

오래된 신사이기는 한데 규모가 좀 작다.

신사 옆에 있던 탑들.



타쿠 하치만 신사 맞은 편에는 19세기에 타쿠 영주가 따로 지은 타쿠 신사도 있다.






근데 비가 와서 그렇겠지만, 신사 특유의 음기와 더불어서 매우 눅눅했고... 거기에 숲이 우거져 있다 보니 모기들이 아조 그냥...

세이케이 공원(西渓公園)은 위에 말했던 도겐 슈샤 출신의 석탄왕 다카토리 고레요시(高取伊好)가 출신 마을에 조성해서 기증한 공원이다. 공원의 중간에는 설립자인 다카토리의 동상이 서있다.

그리 크지 않은 공원이지만 가볍게 산책나와서 쉬기에 편한 소박한 공원이다.



주황색 기와의 건물은 간오테(寒鶯亭)라고 불리는 곳으로 주민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공회당으로, 역시나 다카토리가 기증한 건물이다. 공회당 중 목조로 된 건물의 전형으로 의의가 있는 듯.

여행 가이드에도 이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실어놨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찍은 구도라 예쁘게 보이기는 함.



간오테의 정문.

간오테 바로 옆에 있던 스이킨쿠쓰(水琴窟)인데, 한자를 보면 물로 만들어진 악기(거문고나 가야금)라는 건데, 물이 구멍으로 떨어지면서 생기는 소리를 정원에서 즐기도록 해놓은 정원 구성 요소라고 한다. 메이지 시대까지 유행했으나 점차 줄어들었다고.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이런 평범한 일본 가정의 모습이 나타났다.

타쿠 하치만 신사 쪽으로 내려오면서 되돌아 찍었다.

오래된 집을 정원과 담은 살리고 건물만 새로 지은 거지 싶은 집의 모습. 다리가 아프다보니 저런 집에서 편안히 쉬고 싶어졌...

돌아오는 논두렁에 피어있던 꽃... 저승화랑 무척 닮았다. 저승화가 일본 원산이라고 하니 저승화가 맞을지도.

이건 뭐더라...
되돌아오면서 다나카 상점에 우산 반납하면서 할머니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했더니 할머니가 괜찮다...는 뉘앙스의 얘기를 해주신 거 같다. 좋으신 분이다.

나무위키에 철덕들에게 제공할 용으로 찍어놓은 사진. 이런 역은 우리나라에서도 가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다. 라면서 정신 승리 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