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성종이 어우동에게 느꼈던 분노감
2003.02.11 22:43
어우동 사건은 그 보수적인 조선조대의 스캔들로서 아주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어우동이 굳이 사형을 받지 않아도 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형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이 글은 순전히 임용한 - 조선국왕이야기를 요약한 정도이지만 굳이 올리는 것은
이 해석이 너무나 정치적이고 그럴 듯해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이렇게 바라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소개하는 면에서 올려본다.
어우동이 잡히고 난 다음에 대신과 성종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 이때 조정중신들간에 충격은 컸지만 흔히들 얘기하는 일벌백계 따위의
비합리적인 처벌이 아니라 역사의 전범이 될 만큼 올바른 결론을 위한 논의가 진행
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성종이 갑자기 어우동의 사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선다.
알다시피 성종은 세종때만큼이나 태평성대와 평화로움이 많았던 시기를 만들어낸
임금으로 비교적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향의 정치를 폈었다. 그런 그이기에 평소에도
재판결과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형을 법정 형량보다 적게 주려고 노력하던
임금이었는데 어우동에 대해서만 유독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거다. 심지어 어우동을
협박하여 통정을 한 노비에게도 사형을 면하고 귀양으로 감형조치를 내렸음에도
말이다. 이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은 어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영화나 소설 속에서 흔히 표현하는 말대로, 정말 조선시대의 꽉 막힌 유교주의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하극상을 범한 노비에
비해서 지나치게 엄격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책의 저자는 성종이 어우동을 죽이고자 했던 이유는 정작 다른 데에 있다고
얘길한다.
어우동이 잡히고 난 다음에 취조를 하는 과정에서 어우동과 어우동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게 하기 위해서 관련이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게
됐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성종이 화를 낸 진짜 이유가 있었다. 어우동이 분 남자들은
대부분 재능은 뛰어난데 집안이 조금은 좋지 못한 젊은 신진사류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기존의 훈구대신들을 견제하고 성종이 지지세력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심하게 키우던 인물이었다. 세종때의 집현전 학사, 정조때의 규장각 학자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어우동 사건에 연루된 이상 그들은 다시 정계에
진출하기가 힘들게 되는 건 현대에서의 여성문제랑 마찬가지다.
결국 성종입장으로 보면 자신이 공들여서 만들어놓은 정국구도와 인물이 왠 여인
하나에 의해서 완전히 헝클어지고 엉망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거기에 어우동은 지엄한 왕족의 부인이었는데 사대부들이 함부로 가지고 노는
노리개처럼 취급했으니 왕으로서는 자존심도 상했던 거다. 비록 사대부와의 협의를
중시하여 일을 처리하는 성종이었으나 그 정도가 날로 심해지는 그들의 간섭에
갈수록 좌절을 느끼는 와중에, 그들을 견제할 수단의 인물들이 풍지박살나버리고,
더군다나 그들에 의해 욕까지 입었으니 그 분노는 짐작이 갈 만하다.
결국 성종이 어우동을 죽인 것은 정치적인 구도의 좌절을 불러일으킨 데에 대한
분노였지, 결코 흔히들 얘기하는 조선시대의 억압된 성의식때문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어우동이 굳이 사형을 받지 않아도 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형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이 글은 순전히 임용한 - 조선국왕이야기를 요약한 정도이지만 굳이 올리는 것은
이 해석이 너무나 정치적이고 그럴 듯해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이렇게 바라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소개하는 면에서 올려본다.
어우동이 잡히고 난 다음에 대신과 성종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 이때 조정중신들간에 충격은 컸지만 흔히들 얘기하는 일벌백계 따위의
비합리적인 처벌이 아니라 역사의 전범이 될 만큼 올바른 결론을 위한 논의가 진행
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성종이 갑자기 어우동의 사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선다.
알다시피 성종은 세종때만큼이나 태평성대와 평화로움이 많았던 시기를 만들어낸
임금으로 비교적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향의 정치를 폈었다. 그런 그이기에 평소에도
재판결과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형을 법정 형량보다 적게 주려고 노력하던
임금이었는데 어우동에 대해서만 유독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거다. 심지어 어우동을
협박하여 통정을 한 노비에게도 사형을 면하고 귀양으로 감형조치를 내렸음에도
말이다. 이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은 어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영화나 소설 속에서 흔히 표현하는 말대로, 정말 조선시대의 꽉 막힌 유교주의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하극상을 범한 노비에
비해서 지나치게 엄격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책의 저자는 성종이 어우동을 죽이고자 했던 이유는 정작 다른 데에 있다고
얘길한다.
어우동이 잡히고 난 다음에 취조를 하는 과정에서 어우동과 어우동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게 하기 위해서 관련이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게
됐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성종이 화를 낸 진짜 이유가 있었다. 어우동이 분 남자들은
대부분 재능은 뛰어난데 집안이 조금은 좋지 못한 젊은 신진사류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기존의 훈구대신들을 견제하고 성종이 지지세력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심하게 키우던 인물이었다. 세종때의 집현전 학사, 정조때의 규장각 학자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어우동 사건에 연루된 이상 그들은 다시 정계에
진출하기가 힘들게 되는 건 현대에서의 여성문제랑 마찬가지다.
결국 성종입장으로 보면 자신이 공들여서 만들어놓은 정국구도와 인물이 왠 여인
하나에 의해서 완전히 헝클어지고 엉망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거기에 어우동은 지엄한 왕족의 부인이었는데 사대부들이 함부로 가지고 노는
노리개처럼 취급했으니 왕으로서는 자존심도 상했던 거다. 비록 사대부와의 협의를
중시하여 일을 처리하는 성종이었으나 그 정도가 날로 심해지는 그들의 간섭에
갈수록 좌절을 느끼는 와중에, 그들을 견제할 수단의 인물들이 풍지박살나버리고,
더군다나 그들에 의해 욕까지 입었으니 그 분노는 짐작이 갈 만하다.
결국 성종이 어우동을 죽인 것은 정치적인 구도의 좌절을 불러일으킨 데에 대한
분노였지, 결코 흔히들 얘기하는 조선시대의 억압된 성의식때문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