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홈페이지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다가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후에야 보여서 이제야 올린다.
후에 황궁 주변을 둘러보았으니, 이제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식민지 후에 공화국 테크를 탔으니) 응우옌 왕조의 황궁으로
진입한다.
엔하위키에 따르면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50년 정도 응우옌 왕조의 황궁으로,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본따 지어졌고,
이름도 자금성(Tử Cấm thành, 紫禁城, 뜨껌타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래 지도 보면 알겠지만 해자로 둘러싸여 있고,
해자의 물은 이전 글에서도 얘기한 넓디 넓은 흐엉강(香江)에서 끌어왔다고 한다.

오른쪽 동문으로 접근을 시작했는데 입구는 아래쪽인 남쪽의 정문에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움직였다.
입장료는 10만 동으로, 우리나라 돈으로는 5천 원. 별로 안비싼 거 같은데 비싸서 안들어간다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있기는 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후에가 최전선에 위치했었고, 구정 공세 때 베트콩에게 점령되기도 해서 손상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6.25 때 문화재들이 손상당했던 것처럼) 지금은 복원 중이라고 한다.

해자에 자란 풀들의 모습과 궁성의 외벽이 보인다.

이 문은 궁궐 동쪽의 외곽 성벽의 문이다. 오토바이만 가득 지나다니는데, 이 동네 사람이 아닌 내가 걸어다니기 쉽지 않았다.

황궁 외벽과 내벽 사이의 해자

여기는 황궁 내벽의 동문이다. 여기로 입장하려고 했으나 입장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일단 사진만.

동문을 지키는 용의 모습. 그리고 저 현란한 색깔들의 상당수는 도자기의 파편으로 만든 거였다. 일종의 모자이크 기법인데
처음 보는 거라 신기했다.

남쪽의 정문에서 외벽을 바라본 모습.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황궁의 정전(正殿)인 태화전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의 근정전 같은 곳이다.
그럼 호수는 경회루가 있는 그 호수인 걸까.

황제를 (베트남의 응우옌 왕조는 내부에는 황제를 칭하고, 중국에는 제후국을 칭하는 체제였다.) 상징하는 용모양의 기둥

태화전을 멀리서 찍어본 모습. 이 가운데 길은 황제만 걷고 신하들은 못걸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태화전 앞에서 좌우를 지키던 신수. 기린인가...

이 황궁의 색깔있는 조각들은, 이런 식으로 다자기 파편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만든 거였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서 있떤 품석 (벼슬 등급 품계별 표지석)


마찬가지 도자기 모자이크.

품계석. 잘 보면 正四品 글자가 보인...다...

태화전을 지나 더 안쪽의, 황궁 내부의 모습

이 사진과 아래 사진은 태화전 뒤의 좌우 관문의 사진이다. 달과 해로 대응을 이루고 있다.
(위 사진은 가운데 月 들어갔고, 아래는 日이 들어갔다.)


경복궁에서도 본 적이 있는, 화재 예방을 위한 방화수를 담는 항아리. (경복궁의 그것은 '드므'라고 한댄다)

태화전 뒷면을 찍은 모습. 그러고 보니 정면을 이 정도 구도로 찍은 사진이 없네.

요건 상태로 봐서는 최근에 복원한 조각상인 듯.

아직 폐허로 보이는 담벽. 이 사진을 굳이 찍은 이유는 윗 부분의 모자이크와 용조각...

이게 담 위에 있떤 용조각. 과거에는 저 도자기 파편 모자이크로 꽤나 현란했을 거 같다.


담벽에 새겨진 꽃과 새의 부조. 왼쪽은 말이었던가...


붉은 기둥과 황금빛 용조각들

뒷쪽은 아직 복원이 안된 게 많아 보였다. 휑한 빈 터도 있고.


작은 정원의 느낌.


역시 예전에는 화려했을 거 같은 조각


용... 이겠지?

도자기 모자이크로 그린 복(福)자




가운데 글자는 장수를 기원하는 목숨 수(壽) 문양

녹색 유리 질감으로 마치 대나무로 만든 것 같은 다리 난간

태자와 태자빈이 있는 공간이라던가.

위 건물에서 앞쪽 풍경을 본 모습

태자 내외가 건물 안에서 봤을 풍경이 이런 거였을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산과 호수를 축소해놓은 듯한 정원이었다.

궁궐 뒷편의 담벼락을 따라 만들어진 해자의 모습




마찬가지로 호수와 기암괴석의 산을 만든 듯한 정원

과거 행사의 모습을 그린 벽화인 듯.














마지막으로 궁궐 밖을 나갔을 때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