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째 페더러 덕분에 눈이 호강한다는 생각을 하면 늘
그랜드 슬램 경기들을 보는데요.
어제 로딕이랑 머레이 경기 보면서도 재미있더군요. 1, 2세트는 각자 자기 게임 지켜가면서
하나의 게임만 브레이크해서 이기는 패턴, 그리고 3세트는 각자 한 번씩 브레이크한 후에
타이 브레이크에서 결정, 4세트도 타이브레이크에서 결정.
어떻게 보면 전체적인 균형 면에서는 머레이가 좋았는데, 로딕은 어째 어째 버티고, 자기 게임
챙기다가 온 찬스 중 몇 개를 잘 물어서 승리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뭐 원래 모든 승부가
그렇겠지만...
뭐랄까... 테니스라는 게, 경기를 결정짓는 점수라는 게 야구랑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야구에서 안타를 아무리 많이 쳐봐야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점수가 나지 않죠. 안타 3개
치고 무사 만루에서 3삼진은 시망이고, 2아웃에 볼넷 하나라도 3루타 하나면 점수고.
그런 것처럼 테니스도 5번의 점수를 따야 이기는 게임, 그 게임이 모여서 6개가 되어야 얻는 세트,
그 세트가 3개 모여야 (여자는 2개) 승리.
중간에 아무리 득점을 내봐야 게임을 못얻었다면 시망... 그니까 40-40 까지 가서 게임을 주나,
40-0으로 게임을 주나 결과는 똑같다는 거... 게임을 6-6까지 만들었고, 타이브레이크에서 5-5
까지 만들었어도 한 번 실수하면, 6-0으로 지는 거랑 똑같이 세트를 날린다는 거.
이런 특성도 페더러를 테니스의 강자로 만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07년 US Open 8강전인가, 거기에서 로딕이랑 페더러가 만났는데 둘 다 2세트까지 팽팽하게
자기 게임을 챙겨, 두 세트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페더러는 그
타이브레이크를 가져오죠. 그리고 좌절한 로딕은 3세트에서 6-2로 무기력하게 패퇴...
페더러가 게임이 잘 될 때에는 상대를 갖고 놀지만, 며칠 전 에이스를 20개 넘게 터뜨린
카를로비치와의 경기나 어제의 하스 경기 때에도 상대가 강력하면 상대 게임은 놔두고 자기
게임만 챙기다 결정적인 타이밍에 딱 하나만 챙겨올 수 있는 능력.
셋트스코어 6-6의 타이브레이크, 그것도 5-5로 팽팽한 경우에도 상대가 딱 한 번 첫 서브가
안들어갔을 때, 그때 챙겨오는 능력.
자신의 게임은 내주지 않는 기본적인 탁월한 실력에, 운영 능력 + 클러치능력인 거겠죠.
어제 로딕과 머레이 경기가 재미가 있기는 했지만 '저 정도의 틈이라면 페더러는 충분히
빼앗아 올 거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페더러빠인 저로서는 빠심 100% 더해서 페더러의 우승을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p.s. 저런 페더러의 강점도 전후좌우를 짐승 같은 체력과 발로 뛰어다니면서 다 막아내는
나달의 끈질김에는 힘들어하죠. 하지만 나달이는 샌디쿠팩스가 될 지 모르겠네요.
작은 체구를 쥐어짜서 무시무시한 공을 뿜어냈던 페드로와 일맥상통하는 것도 같고.
클레이나 잔디라면 몰라도 하드에서 마저 그렇게 무식하게 뛰어다녔으니 무릎이...
작년부터 인저리 프론 느낌이 있다 그러더니만 결국 오래 프랑스 오픈에서 터져버렸고
윔블던도 출전못했죠. 이게 장기화될 지, 그의 플레이를 위축시키지는 않을지...
재작년과 작년의 윔블던은 정말 희대에 남을 명승부였고 한 번은 기쁘고, 한 번은
슬펐지만, 그렇게 재미있는 경기는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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