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요즘에 와서는 측은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렇게 무시하는 속에서 그들은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와 시각을 넓힐 기회를 잃어버리거든.
만화를 어른들이 무시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바로 visual한 부분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어른들은 글을 읽으면서 상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런지...
물론 글로 쓰여진 소설로 펼칠 수 있는 상상의 나래와 머리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그림을 통해 자라나는 사람의 사고력을 깊이있게 만들 수 있다는 데에는 일면
수긍하는 바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visual에 치중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나타낼 수 없는
생각들과 느낌을 visual은 얼마나 잘 나타내는지...
그리고 그 visual의 만화 속에 담긴 그 미묘하고 깊은 뜻을 얼마나 사람들은 알고
있는지...
집에 있는 "아빠는 요리사"를 보면 주인공 일미에게는, 평생을 홀로 두 자식을 키운
강하디 강한, 마치 경상도 남자와 같은, 어머니가 계시는데, 그 어머니가 재혼을 한
에피소드가 있다. 재혼을 한 어머니가 부끄러움을 어쩔 수 없어, 아들에게 버럭버럭
화만 내고 어쩔 줄 몰라하는데... 어머니와 새 아버지의 치약이 한 컵에 담겨 있는
장면을 보면서 일미는 비로소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그 함께 담겨진 칫솔통은
수천 개의 말로도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을 (만화는, Visual은) 그렇게도 아주
자그마하면서도 따뜻하게 나타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화뿐만 아닐 거다.
전에 얘기했던 '내 집으로 와요'에서 나온 주인공 여자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텅빈
공간... 그걸 과연 말이 나타낼 수 있을까.


혹은 아래 그림처럼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때문에,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자, 떠나려는 여자...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그녀를 위해 포기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남자가 떠나가겠다는 여자를 잡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걸 잊고 산다.
자라나는 어린애들에게 말을 통한 상상력을 키우는 법도 귀중하지만 한 순간의 작은
장면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깃들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시인들은 말의 역부족을 느끼기에 말로서 할 수 없는 말을 결국 우리가 아는 전통적
말의 느낌을 파괴하는 형식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완벽하지는 않으리라...
만화나 사진이나 영화는 결국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보충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고귀한 소설이나 시에서 표현하기 힘든,
천박해보이는 만화에서나 가능한 부분일 거다.
만화가 만능은 아니겠지만, 만화가 가진 Visual의 힘은 아주 아주 매력적이기 그지
없다.
요즘에 와서는 측은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렇게 무시하는 속에서 그들은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와 시각을 넓힐 기회를 잃어버리거든.
만화를 어른들이 무시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바로 visual한 부분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어른들은 글을 읽으면서 상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런지...
물론 글로 쓰여진 소설로 펼칠 수 있는 상상의 나래와 머리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그림을 통해 자라나는 사람의 사고력을 깊이있게 만들 수 있다는 데에는 일면
수긍하는 바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visual에 치중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나타낼 수 없는
생각들과 느낌을 visual은 얼마나 잘 나타내는지...
그리고 그 visual의 만화 속에 담긴 그 미묘하고 깊은 뜻을 얼마나 사람들은 알고
있는지...
집에 있는 "아빠는 요리사"를 보면 주인공 일미에게는, 평생을 홀로 두 자식을 키운
강하디 강한, 마치 경상도 남자와 같은, 어머니가 계시는데, 그 어머니가 재혼을 한
에피소드가 있다. 재혼을 한 어머니가 부끄러움을 어쩔 수 없어, 아들에게 버럭버럭
화만 내고 어쩔 줄 몰라하는데... 어머니와 새 아버지의 치약이 한 컵에 담겨 있는
장면을 보면서 일미는 비로소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그 함께 담겨진 칫솔통은
수천 개의 말로도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을 (만화는, Visual은) 그렇게도 아주
자그마하면서도 따뜻하게 나타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화뿐만 아닐 거다.
전에 얘기했던 '내 집으로 와요'에서 나온 주인공 여자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텅빈
공간... 그걸 과연 말이 나타낼 수 있을까.
혹은 아래 그림처럼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때문에,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자, 떠나려는 여자...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그녀를 위해 포기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남자가 떠나가겠다는 여자를 잡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걸 잊고 산다.
자라나는 어린애들에게 말을 통한 상상력을 키우는 법도 귀중하지만 한 순간의 작은
장면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깃들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시인들은 말의 역부족을 느끼기에 말로서 할 수 없는 말을 결국 우리가 아는 전통적
말의 느낌을 파괴하는 형식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완벽하지는 않으리라...
만화나 사진이나 영화는 결국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보충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고귀한 소설이나 시에서 표현하기 힘든,
천박해보이는 만화에서나 가능한 부분일 거다.
만화가 만능은 아니겠지만, 만화가 가진 Visual의 힘은 아주 아주 매력적이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