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아이라고 했던 오빠의 죽음으로, 자신이 그 무거운 운명을 짊어지고 나가려고 할 때,
사실 그녀는 오빠의 그림자에 가려져 그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아가씨였고, 그 이상도
아니었다.
비로소 운명의 아이가 되었으되, 그녀는 그녀를 버리고 오빠가 되어야 했다. 사라사는 세상에
없었고, 오직 타타라만 존재하게 된 때. 의무감과 정의감으로 자신을 버리고 싸우려는 때에,
오빠만 알고, 그녀의 존재를 미약하게 느끼던 마을 아주머니가 무덤을 하나 쌓아준다.
'운명의 아이는 그런 별 아래 태어난 것입니다'라는 예언자의 말에,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라고 외치는데...
'타타라님(예언의 소년), 저도 돌 무덤을 하나 만들어도 될까요. 사라사의 묘비를요.'
'타타라님이 살아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사라사를 위해 슬퍼하지 않는
것이 너무 가여워서...'
'예언의 소년 타타라'라는 이름 속에 이름없이 죽어가는 자들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혁명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지 않게 하는 받침이겠지.
그래서 난 바사라라는 대하소설에서 이 장면이, 혁명을 폭주시키지 않는 가장 큰 모습으로
본다.
p.s. 그 다음으로 인상에 남는 장면으로는, 물론 슈리와 사라사가 서로가 적이라는 걸
깨닫는 장면으로 꼽는다. 그 다음은 슈리가 꿈꾸던 녹색 마을을 사라사가 망쳐버리는
그 아이러니로... 중요한 건 대의명분이나 혁명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라는 거...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라는, 때론
낡아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한다.
사실 그녀는 오빠의 그림자에 가려져 그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아가씨였고, 그 이상도
아니었다.
비로소 운명의 아이가 되었으되, 그녀는 그녀를 버리고 오빠가 되어야 했다. 사라사는 세상에
없었고, 오직 타타라만 존재하게 된 때. 의무감과 정의감으로 자신을 버리고 싸우려는 때에,
오빠만 알고, 그녀의 존재를 미약하게 느끼던 마을 아주머니가 무덤을 하나 쌓아준다.
'운명의 아이는 그런 별 아래 태어난 것입니다'라는 예언자의 말에,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라고 외치는데...
'타타라님(예언의 소년), 저도 돌 무덤을 하나 만들어도 될까요. 사라사의 묘비를요.'
'타타라님이 살아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사라사를 위해 슬퍼하지 않는
것이 너무 가여워서...'
'예언의 소년 타타라'라는 이름 속에 이름없이 죽어가는 자들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혁명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지 않게 하는 받침이겠지.
그래서 난 바사라라는 대하소설에서 이 장면이, 혁명을 폭주시키지 않는 가장 큰 모습으로
본다.
p.s. 그 다음으로 인상에 남는 장면으로는, 물론 슈리와 사라사가 서로가 적이라는 걸
깨닫는 장면으로 꼽는다. 그 다음은 슈리가 꿈꾸던 녹색 마을을 사라사가 망쳐버리는
그 아이러니로... 중요한 건 대의명분이나 혁명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라는 거...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라는, 때론
낡아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