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서 비판을 할 수 없는 혹은 안티가 하나도 없는 존재가 둘 있으니
바로 한화의 김인식 감독님과 선수협 초대 회장님 송진우 선수다.
김인식 감독님의 경우 80년대에는 해태의 막강 투수진을 조련하더니만, 91년에 창단된
쌍방울에 가서는, 신생팀의 기반을 굳건히 닦아놓았다.
그리고 95년 OB로 가서는...
전년도에 감독의 폭행과 선수들의 이탈 사건으로 어수선한 팀을 추스리고는 바로 그 해에
우승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2003년까지 팀을 이끌면서 준우승과 우승을 한 번 더 이끌어
냈다.
성적만 보면야 해태의 V9을 만든 김응용 감독보다 못하고, 10년 동안 준우승 한 번, 우승
4번을 한 김재박 감독보다 못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보다 김인식 감독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뭘까. 김응용 감독의 경우 깡패 야구, 제맘대로의 야구, 무조건 이기는 것만 추구
하고 선수는 안중에도 없는 야구, 김재박은 이기기만 추구해 재미없는 야구라고 욕먹는
상황에서 말이야.
바로 긴 안목과 미래를 대비하면서 끈기있게 기다리면서 선수들을 믿는다는 것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은 쓸 수 없는 선수라도, 당장은 모자람이 많은 선수라도 그 선수가
클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리면서 팀의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또한 실력 향상이 안돼서,
부상당했기때문에 다른 팀에서 버림받았던 선수들을 따뜻한 시각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마지막까지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모습. 그리고 그에게 보답하는 선수들의
감동 부활 드라마. 오죽하면 그에게는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좋은 성적.
아마도 순간순간 승부에 집착하던 이전 감독과는 너무나 달랐고, 모든 선수가 그에게
감복하고 존경하며, 다른 팀의 팬들도 그만은 미워할 수 없는 인화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올해, 최약체로 지목받던 한화를 2위 다툼을 하게까지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에 좋아하는 감독님이 온다는 건 참 기분 좋고 설레이고 기대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회장님' 송진우 선수.
그 전에는 그저 자신의 맡은 바 일만 묵묵히 하는 선수로만 알았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
정도로 자기 관리에만 철저한 선수 말이다. 전력을 보면 팀을 위해서 자신이 망가지더라도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가리지 않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팬이나 다른 선수들에게 친화적인
이미지는 아니었다. 묵묵히 맡은 책임을 완수하면서도 누구에게 표가 안나는 선수.
거기에 92년도에 구원 투수상과 승리투수상을 타기 위해 감독의 배려대로 얍삽하게 행동
했던 이미지마저 있었으니.
하지만 이 선수가 어느 시점부터 팬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구위가
떨어져 이제는 한물갔으려니 했을 무렵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거기에 맞춰 변화하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을 때부터다. 그리고 선동열을 넘어서는 최다승 기록을 향해 달려갈
때, 팀의 우승도 이끌어내고, 사상 최초로 FA 대박을 터뜨렸을 때.
한 마디로 젊은 날의 혈기 왕성하던 시절을 지나, 약간의 고비를 넘기고 완숙함의 절정에서
모든 것을 누리려 할 때에...
선수협 사태가 터졌다. 젊은 선수들이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려고 일어섰었다. 그 중심
에는 많은 스타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들보다는 더 힘없는 선수들을 위해, 그리고 선수
전체의 권익을 위해서 일어섰을 때, 몇몇 스타 선수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참여하기를
꺼렸다. 자칫하면 최동원이 주축이 된 88년처럼 와해될 분위기도 컸다.
그런데... 선출된 회장이 바로 송진우 선수였다. 그리고 수락한 것이 의외였다. FA로
대박을 챙겼던 그가 그런 것들 버리고 나섰던 거였다. 때론 이기적으로 보일만큼 자기
관리만 철저히 해오던 그가 말이다.
이전까지 누려왔던 모든 이득을 다 버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것을 버리고 후배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곰곰히 생각해봤을 때, 그건 그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심성의껏 한다는 것.
아마도 그는, 선수협을 주도한 젊은 선수만큼 깨어있는 의식으로 일을 맡은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들중에서의 자기 위치, 그리고 자신의 맡았을 때의 영향력, 그리고
선수협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 만큼의 통찰력이 있었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던 거다. 그 책임감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음에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책임감만큼 훌륭히 일을 처리해줬고.
선동가가 아닌 중심을 잡는 사람이 회장이었기때문에 선수협은 그 숱한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출범하고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수협의 주축들이 그 사태로 연습부족으로 다음 해에 휘청거릴 때 (반대로 말하면 이기적인
선수들이 자기 몸만 챙길 때) 그만큼은 FA 대박이 먹튀가 되지 않게 해줬고, 선수협을
하더라도 운동은 제대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나이 40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자신의
뜻대로 묵묵히 행하는 사람에게는 길은 항상 열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모든 운동선수의 사표와 같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두 사람에게는 안티가 없고, 비판할 수도 없는 성역과도 같이 되어버렸다.
그런 두 사람이 모여있는 한화팀을 응원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바로 한화의 김인식 감독님과 선수협 초대 회장님 송진우 선수다.
김인식 감독님의 경우 80년대에는 해태의 막강 투수진을 조련하더니만, 91년에 창단된
쌍방울에 가서는, 신생팀의 기반을 굳건히 닦아놓았다.
그리고 95년 OB로 가서는...
전년도에 감독의 폭행과 선수들의 이탈 사건으로 어수선한 팀을 추스리고는 바로 그 해에
우승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2003년까지 팀을 이끌면서 준우승과 우승을 한 번 더 이끌어
냈다.
성적만 보면야 해태의 V9을 만든 김응용 감독보다 못하고, 10년 동안 준우승 한 번, 우승
4번을 한 김재박 감독보다 못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보다 김인식 감독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뭘까. 김응용 감독의 경우 깡패 야구, 제맘대로의 야구, 무조건 이기는 것만 추구
하고 선수는 안중에도 없는 야구, 김재박은 이기기만 추구해 재미없는 야구라고 욕먹는
상황에서 말이야.
바로 긴 안목과 미래를 대비하면서 끈기있게 기다리면서 선수들을 믿는다는 것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은 쓸 수 없는 선수라도, 당장은 모자람이 많은 선수라도 그 선수가
클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리면서 팀의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또한 실력 향상이 안돼서,
부상당했기때문에 다른 팀에서 버림받았던 선수들을 따뜻한 시각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마지막까지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모습. 그리고 그에게 보답하는 선수들의
감동 부활 드라마. 오죽하면 그에게는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좋은 성적.
아마도 순간순간 승부에 집착하던 이전 감독과는 너무나 달랐고, 모든 선수가 그에게
감복하고 존경하며, 다른 팀의 팬들도 그만은 미워할 수 없는 인화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올해, 최약체로 지목받던 한화를 2위 다툼을 하게까지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에 좋아하는 감독님이 온다는 건 참 기분 좋고 설레이고 기대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회장님' 송진우 선수.
그 전에는 그저 자신의 맡은 바 일만 묵묵히 하는 선수로만 알았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
정도로 자기 관리에만 철저한 선수 말이다. 전력을 보면 팀을 위해서 자신이 망가지더라도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가리지 않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팬이나 다른 선수들에게 친화적인
이미지는 아니었다. 묵묵히 맡은 책임을 완수하면서도 누구에게 표가 안나는 선수.
거기에 92년도에 구원 투수상과 승리투수상을 타기 위해 감독의 배려대로 얍삽하게 행동
했던 이미지마저 있었으니.
하지만 이 선수가 어느 시점부터 팬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구위가
떨어져 이제는 한물갔으려니 했을 무렵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거기에 맞춰 변화하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을 때부터다. 그리고 선동열을 넘어서는 최다승 기록을 향해 달려갈
때, 팀의 우승도 이끌어내고, 사상 최초로 FA 대박을 터뜨렸을 때.
한 마디로 젊은 날의 혈기 왕성하던 시절을 지나, 약간의 고비를 넘기고 완숙함의 절정에서
모든 것을 누리려 할 때에...
선수협 사태가 터졌다. 젊은 선수들이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려고 일어섰었다. 그 중심
에는 많은 스타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들보다는 더 힘없는 선수들을 위해, 그리고 선수
전체의 권익을 위해서 일어섰을 때, 몇몇 스타 선수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참여하기를
꺼렸다. 자칫하면 최동원이 주축이 된 88년처럼 와해될 분위기도 컸다.
그런데... 선출된 회장이 바로 송진우 선수였다. 그리고 수락한 것이 의외였다. FA로
대박을 챙겼던 그가 그런 것들 버리고 나섰던 거였다. 때론 이기적으로 보일만큼 자기
관리만 철저히 해오던 그가 말이다.
이전까지 누려왔던 모든 이득을 다 버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것을 버리고 후배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곰곰히 생각해봤을 때, 그건 그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심성의껏 한다는 것.
아마도 그는, 선수협을 주도한 젊은 선수만큼 깨어있는 의식으로 일을 맡은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들중에서의 자기 위치, 그리고 자신의 맡았을 때의 영향력, 그리고
선수협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 만큼의 통찰력이 있었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던 거다. 그 책임감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음에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책임감만큼 훌륭히 일을 처리해줬고.
선동가가 아닌 중심을 잡는 사람이 회장이었기때문에 선수협은 그 숱한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출범하고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수협의 주축들이 그 사태로 연습부족으로 다음 해에 휘청거릴 때 (반대로 말하면 이기적인
선수들이 자기 몸만 챙길 때) 그만큼은 FA 대박이 먹튀가 되지 않게 해줬고, 선수협을
하더라도 운동은 제대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나이 40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자신의
뜻대로 묵묵히 행하는 사람에게는 길은 항상 열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모든 운동선수의 사표와 같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두 사람에게는 안티가 없고, 비판할 수도 없는 성역과도 같이 되어버렸다.
그런 두 사람이 모여있는 한화팀을 응원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