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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국민방위군 사건 from 브리태니커

2008.11.21 12:33

RanomA 조회 수:1465

전쟁때 국군에 지원할 돈을 이승만과 그 일당이 홀라당 먹는 바람에 국군들이 굶어죽고, 얼어죽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건.

한강다리 끊고 도망간 거부터 해서, 이승만의 전력은 화려하고 화려하고 또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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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방위군 사건

요약: 6.25전쟁 당시 국민방위군 간부들이 국민방위군에 편성된 정부예산을 횡령하여 수많은 청년들을 굶어 죽게 한 사건.


이승만 정부는 중국 인민지원군의 6·25전쟁 개입으로 1951년 1·4후퇴를 하면서 100만여 명에 달하는

청년들을 남쪽으로 후송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전쟁 초기 남한 대부분의 지역을 북한이 점령함에 따라

병력보충에 결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날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전대응책이었다.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12월 15일 '국민방위군 설치법안'을 국회에 상정, 같은 해 12월 16일 이 법안을

즉시 공포하여 발효시켰다. 국민방위군 설치법안에 따라 경상남도·경상북도 일원에 51개의 교육대를

설치하고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청년들을 수용했다. 국민방위군 지도부는 극우단체로서 이승만 정부를

지지했던 대한청년단의 간부들로 구성되었다.

국민방위군 예산은 1951년 1월 30일 국회에서 통과되었는데, 방위군 총인원을 50만 명으로 추산하여

3개월분 총 209억 원을 책정하였지만 1인당 배당액은 겨우 목숨을 유지하기에도 부족한 액수였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실제 예산이 배당되는 과정에서 생긴 국민방위군 간부들의 횡령에서 발생했다.

이때문에 식량과 침구를 지급받지 못한 방위군 5만 명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고, 영양실조에 걸렸다.

부당한 처우를 참다 못한 방위군들은 집단탈출을 시작했으며,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이승만

정부에 대해 분노했다. 궁지에 몰린 이승만 정부는 형식적인 조사만을 실시, 방위군 간부 몇 명만을

기소하여 징역 4월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함으로써 사건을 축소시켜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국회의 재조사 과정에서 엄상섭 의원의 폭로로 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 부사령관 윤익헌,

재무실장 강석한, 조달과장 박창언, 보급과장 박기환 등이 방위군 예산 10억 원을 착복하고 이승만 개인의

정치 조직에 수천만 원의 정치자금을 준 사실
이 밝혀지자, 이시영 부통령이 사임서를 냈고 신성모

국방부장관이 물러났으며 김윤근·윤익헌·강석한·박창언·박기환을 군법회의에 회부해 총살형에 처했다.

그럼에도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은 이승만의 지지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상납된 돈에 대한 수사는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전쟁의 와중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