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sh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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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김영삼의 외교적 삽질

2008.02.16 23:20

RanomA 조회 수:1039

보수 언론에서 떠들기도 그렇고, 다들 인식하는 것도 그렇고... (지난 번 서해교전과

관련한 박정희의 안보적 굴욕과 홀대처럼) DJ와 노무현때만 한미관계가 안좋다라고

많이 알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박정희때처럼 한미관계가 안좋은 적도 없고 (대통령

선거에 떨어져 낭인으로 떠돌던 닉슨을 홀대했다가 나중에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

완전 굴욕이었고. 카터랑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김영삼때처럼 바보된 경우도 없고...

쯧쯧쯧... 안보상황때문에 친미하는 건 좋은데 제대로나 하자구.

불펜의 Double-hit님 글을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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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11월 23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예정시간을 지나도 두 대통령은 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시각,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해결'이라는 표현 대신 '철저하고 광범위한 해결'을 고집했으며,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발표는 한국이 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리고 남북 특사교환 이전에 북-미 협상은 시작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정상회담이 있기 전 한-미 외교관리들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해법'을 이미 마무리해 놓은 상태였기에,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관리들은 집무실의 정상회담이 간단한 확인과정을 밟는 '의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 정상회담은 '포괄적 해결'이라는 표현과 팀스피리트훈련 문제를 둘러싼 '돌출사건'으로 80분이나 계속됐다.

예정시간보다 한참 뒤 공동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클린턴 대통령은 화가 난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우런 크리스토퍼 당시 국무장관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화를 냈으며,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정부와 협의를 해 온 미국 관리들은 충격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돌출행동'은 국내인기에만 연연해온 그의 정치행태와 평생의 정치라이벌인 김대중 총재에 대한 알레르기반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대중 총재는 그해 봄, 북핵 해법으로 '일괄타결'을 제안했는데, 김 대통령은 김대중 총재가 사용한 이 표현을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역임한 돈 오버도퍼가 최근 펴낸 <두 개의 코리아>라는 저서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미국 정부가 준비한 포괄적 해결이라는 표현은) 호칭과 내용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오랜 국내정치 숙적인 야당지도자 김대중씨의 '일괄타결'과 비슷한 것이었다. 김씨가 찬성하는 것이라면 김영삼 대통령은 자동적으로 이를 반대했다.”

게다가 당시 국내에서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서 한국이 미국에 끌려다닌다는 여론이 드세었다. 국내여론만 신경쓰는 김 대통령 자신과 그의 주변에 있는 강경파 보좌관들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강경방침을 취하도록 훈수했다. 박관용 비서실장, 정종욱 외교안보수석, 유엔주재 대사로 있으면서 워싱턴까지 달려온 유종하 대사 등이 정상회담을 준비해 온 한승주 외무장관을 젖히고 이러한 '돌출사건'을 강력히 건의한 강경파들로 전해지고 있다.

이 일은 클린턴 대통령과 미국 관리들이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심한 분노와 깊은 회의, 좌절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김영삼-클린턴 대통령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으며, 한-미관계도 뒤따라 악화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국내정치에만 연연해 클린턴 대통령과의 관계를 비롯해 대미 관계 전반을 얼마나 악화시켰는가 하는 예는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오버도퍼 기자의 <두 개의 코리아>에는 이런 귀절도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국내여론의 흐름이다. 전반적인 전략보다는 어떤 쟁점이 갖는 국내정치적 측면에 더 의존하는 김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공식보고서보다 신문제목, 텔레비전 보도를 더 자주 인용했다. 보좌관들은 자신들이 마련해준 공식보고서는 아예 읽지도 않는다고 불평했다. 한 백악관 관리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이나 전화통화 때도, 여론조사 결과와 여론의 흐름, 그의 정치적 입장을 주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94년 10월21일, 북한 핵문제 해법을 담은 북-미 기본합의가 타결됐다. 타결 직후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배경설명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만족스런 것이 아니다.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으로 보아 달라. 미국은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대국 논리로 우리를 밀어부쳤다.”

이 소식에 접한 미국 관리들은 아연실색했다. 제네바 협상과정에 한국 외무부에서 파견한 관리들과 내내 협의를 해 왔는데, “강대국 논리로 밀어 부쳤다”고 하니, 아무리 국내정치에 연연한다고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며 분노와 좌절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의 어느 한반도 전문가는 당시 미국 관리들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과 북이 결혼을 하겠다며 미국에 주례를 부탁했다. 그래 놓고, 돌아서서는 주례가 신부를 데리고 줄행랑을 쳤다고 외치고 다닌다.”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재난의 연속이었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는 비전도 없었으며, 더욱이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일관성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국내 보수언론과 강경파의 감정적 대북강경론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외에

1. 조깅사건

김영삼 전대통령은 민주산악회 활동과 아침마다의 조깅으로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걸 늘 알게모르게 자신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미국순방시에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조깅을 함께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우리 YS 께서는 클린턴을 뒤에 두고 열심히 뛰어가신 겁니다. 마치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 하고요. 나중에 클린턴이 매우 언짢아 했던 것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미국대통령이 조깅을 같이 하자고 했던 것은 두 정상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은밀히 얘기를 나누자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걸 체력자랑으로 낭비하고 괘씸죄까지 얻어서 돌아왔습니다. 외교사에 길이길이 남을 일화입니다.

조깅에 관련된 일화는 이외에도 많습니다. 남미의 한나라에서 그 나라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과도 조깅을 함께 한 일이 있습니다. 조깅을 마친후 YS께서 하신 말씀이 "육사생도들이라 잘뛸줄 알았는데 다 내 뒤에서 오더라"였다고 합니다. 어떤 정신나간 생도가 남의 나라 국가원수랑 조깅하면서 추월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보조 맞추어 뒤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얘기를 자랑삼아 하고 다니셨으니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밖에요.

2. 외국어

YS께서는 기억력 하나는 매우 탁월한 분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의 이름이나 지명은 잘 못외우신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유명한 얘기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 수상의 이름을 못외워서 우리 수행원들에게 그냥 '차~누구,차~누구'로 부르다가 공식석상에서 '미스터 차!' 라고 지칭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건 엄청난 외교적 실례인데 진실인지는 저도 장담하기 힘들정도 입니다.



3. 대북외교

YS는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고 정상회담을 한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 얘기가 무르익어 확정되려는 찰나에 김일성이 죽음으로써 무산되고 말았는데 문제는 김일성이 죽었을 때의 반응입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해도 북한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인정하고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정부에서 '민족의 반역자가 죄값도 못하고 죽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와버렸습니다. 사회 일각에서 나왔던 김일성 조문 문제때문에이런 반응이 나왔겠지만 이때문에 격분한 북한이 같은 하늘아래서 다시는 YS정부와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 때문에 퇴임시까지 북한과 어떠한 접촉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나중에 북의 NPT 탈퇴와 북핵 문제가 불거질 때도 대한민국은 어떠한 주도적 지위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는 최근 뉴스에도 실린 내용인데 북한의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이 일어나자 격분한 YS가 차후 이런 일이 일어날시 보복할 타격목표 선정을 미국과의 아무런 상의없이 실행한 일이 있습니다. 현재도 전시 작전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행위는 함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를 흔들만한 일이었으며, 나중에 이 첩보를 입수한 미국이 타격목표라도 알려달라고하자 나중에 실행하게 되면 그 전에 알려주겠다라는 답신을 보냄으로서 클린턴 당시 미국대통령으로 하여금 '뭐 이런 동맹이 있는가, 한미관계가 변한것인가'라는 말을 듣게 했다고 합니다.



4. IMF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일인 IMF 사태는 당시 정부의 밀실행정과 무능에서 비롯된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대통령인 YS는 IMF가 뭔지,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측근들의 말입니다. 당시 정재계의 주요관직에 있던 측근들이 자신들의 죄를 덜기위해 일부분 꾸며낸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대통령이 IMF가 뭔지도 몰랐다는 것은 그 자질을 의심해봐야할 정도의 엄청난 무지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주변의 일화를 볼 때 이게 사실인것 같다는 점입니다.

여기까지가 영삼옹의 일화입니다. 앞의 내용은 한겨레 정연주 특파원의 글이고 뒤의 내용은 03의 여러 외교적 일호입니다. 외교라는것 자체가 어찌보면 상대와 소통하는것을 기본전제로 하는데 김영삼은 그 기본자체가 안된 사람이라는걸 어렴풋이 느낄수 있죠.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mb같은 경우 어떤 외교정책을 표방할찌 사뭇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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