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게시판에서도 썼던 글이지만서두...
옛날에 내가 이런 말을 썼구나... 싶다...
"낙숫물도 바위를 뚫는다. 하물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너무 쉬운 거 아닌가..."
참 멋있는 말인데 기억이 가물거린다... 신화가 너무 오래 돼서 꿈으로 생각했나.
난 노빠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그때였을 거다... 그 전까지는 호감 가득한 정치인이었지...
그러니까... 그때... 89년... 어머니의 투쟁때...
87년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 뉴스에서 데모하던 학생들은 모두 탱크에 깔려 죽어야 돼'라는
생각을 하셨던 부모님들이나, 그대로 영향을 받았던 나나...
모두들 그저 평범하게(-_-) 반공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사람들 이외에 아니었지.
그런데 시절이 바뀌어 87년 노동자 대투쟁때 노동자 대표가 되신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사실 중졸이시고, 그저 가진 교양이란 그저 신문의 한자독해 정도일 거다.
신문에서 무얼 얻으셨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다 동료였던 노가다꾼들에게 추대돼서 어설픈 노동조합 임원이 돼셨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는 남들에게 피해되지 않으려고 당신이 아는 지식 안에서 열심히 근로기준법을
공부하셨다...
노태우 시절이 좀 안정된 상태였던 89년...
어용노조를 깨기 위해 '복수노조 금지조항이라는 악법'에 맞서서 '악법은 악일 뿐이다'를
행동하신 어머니.
어머니의 경우에 지역구의 국회의원마저 외면했다. 복수노조 금지라는 실정법이 멀쩡하게
살아있었으니...
그때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옛날 옛적 국회의원이 올바른 경우란 참 들지... 그때
김동주라고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5공 청문회에서 5공 인사들을 추궁해가며 떴던 스타다)
어머님 일행을 위해서 도움을 주기 힘들다고 외면한 상황에서, 어쭈구리 노무현은 나름
'인권/노동' 변호사라고 알려졌는지 농성장소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양산 경찰서와
면담을 주선해줬다...
복수노조금지라는 실정법 위반의 싸움에서, 자기 지역구의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지랍넓게 경찰서에 갇혀있던 어머니와 다른 분들을 구하기
위해서 친절하고 자기일처럼 뛰었더라는 노무현의 기억...이 있다.
그 양산 촌구석의 (통도사가 근처에 있는 동네라오) 일에도 마다하지 않고 힘을 쓰려고 노력했던
그의 기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 개인적인 빚때문에 언제나 주시하던 사람인데, 응원하다 보니 이런 맘 들잖냐.
'너 조낸 "쫌 세속적인 기준"으로 잘 돼어서 힘이 커지고, 대신에 우리 같은 사람 도와줘라'
이렇게 되기를 바랬던 사람으로서 참으로 그의 행보는 참, 믿음감 만빵에 성취도 제로의...
그지 같았다.
3당 합당으로 인해서 거대 여당이 된 상황을 순응하면, 뭐 지역감정도 있고
여태까지 쌓아놓은 명성도 있고 하니 쉽게 그의 정치역정을 걸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적당히 국회의원도 더 하고... 이득도 좀 더 얻고... 한 자리도 얻고...
2000년 총선이었던가... 몇 해 전에 종로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되었던 그 사람이...
(이미 총선에, 부산 시장 선거에 한 3~4번 떨어졌지. 누구 말대로 돈 정말 많았나보다.
저런 삽질을 해대는 거 보면) 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다네...
거기다 제 낙선 동기 김정길을 물귀신처럼 끌어가면서 말이야. ㅋㅋㅋ... (ㅠ_ㅠ)
참내... 씨바...
'씨바, 여기는 왜 오는데. 왜 이 동네 와서 안되는 거 보여주면서, 내 속 뒤집는데!!!
내가 차라리 PK 아니면 그냥 부산/경남 사람 욕하고 말았겠는데 말이야...
왜 내 출신지역을 탓하게 만드는데... 씨바야... 미안시럽게 할래...
그래, 너 멋있는 거 알아. 그래도 꼭 이렇게까지 가다잡을 필요없잖아...
이번만큼은 걍 대충 당선되면 안돼?" 싶더라...
그런 마음에 부산 시민들에게 기대도 해보고 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지랄...
아니나 다를까. 멋진(??? !!!) 패배라고 하지만 패배를 하더구만.
그때에 그 좆같은 정형근 이따구는 당선되고... (정형근, 당선에 찬성하시는 분의 눈물로
쓴 수기 모집합니다... 보다는 요즘은 김용갑 당선 찬성이나 합천군수 당선 찬성분의 수기를
모집하고 싶다는... 한 10만원씩은 자비로 줄 수 있다는...)
그날 혼자서 소주 마시면서 (나 소주 못먹는다. -_-;) 무척이나 무척이나 괴로워하면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나 부산/경남 사람 안할래... 본적 파줘...'
그때 노무현을 패하게 만들었던 사람중의 하나가 허삼수였던가?
광주시민에게 총질한 인간과 관련된 개XX중의 하나인데... 그래도 그 인간이 당선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노무현은... 뭐라더라? 아, 이렇게 말했어.
"농부를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니미럴!!!
제길!!! 노가야!!!
"밭에 있는 흙들은, 여기에는 자갈들이 너무 많으니, 대충 딴 데 심으라고 하는데..."
노무현은 죽어라고 자갈들 많은 거기에다 씨를 심겠다고 부딪히더라...
나는 돌 밭 (이라고 생각했다)... 그 밭에 정말 있기 싫었다...
정략적이었고, 또 그것밖에 몰라서 국가지도자치고는 편협했는지는 몰라도 동서차별에
대해서 온 몸으로 부딪쳐 오더라. (쓰벌 정략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만큼 손해보면서
노력한 정치가 나와봐라. 대통령이 됐다는 결과때문에 과정을 폄하하지 말고, 그 과정때문에
결과를 평가하라고!!!)
니미럴... 여튼...
그런 정치인 조낸 불편하고도 또 불편했다.
부산 출신으로서 부산사람을 원망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드는 그 사람이 참으로 가슴을
후벼파더군.
그러고...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열정과, 또한 자신의 단점을 얘기하는데 난 정말
'아... 그래. 거기까지는 못가겠지만 이만큼은 가겠구나...' 싶더라...
그랬다...
생각해보면 '옳은 길을 위해서 눈 앞에 보장된 나의 이익을 포기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과연 당당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저 물음에 당당한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 큰 진보가 아닐까.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해 '세상은 약삭빠르게 살면 돼'라는 진리를 공유하던 시절에서 조금씩 탈피한다는
그 희망.
또한 그 지랄 같은 학벌 (연대출신인 나도 그럭저럭 기득권자인 듯. 아닌가?) 차별도
무시해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희망.
'노무현이 당선 되면 이민가겠다'는 사람도 꽤 있었나봐. 이회창이 당선되면 이민가겠다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2002년 내내...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했지만,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 누구도 희망을 얘기하지 않았지.
그래. 13년 동안 정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꿈이, '이상적일지는 몰라도 현실적이지는
않다'라고 생각했던 그 꿈이... 이루어졌다.
딴지일보가 한, 2002년 12월 19일 밤에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환성을 질렀던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과 꿈이 일치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정말...
꿈이란...
꾸어볼 만한 것이 아닐까?
옛날에 내가 이런 말을 썼구나... 싶다...
"낙숫물도 바위를 뚫는다. 하물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너무 쉬운 거 아닌가..."
참 멋있는 말인데 기억이 가물거린다... 신화가 너무 오래 돼서 꿈으로 생각했나.
난 노빠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그때였을 거다... 그 전까지는 호감 가득한 정치인이었지...
그러니까... 그때... 89년... 어머니의 투쟁때...
87년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 뉴스에서 데모하던 학생들은 모두 탱크에 깔려 죽어야 돼'라는
생각을 하셨던 부모님들이나, 그대로 영향을 받았던 나나...
모두들 그저 평범하게(-_-) 반공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사람들 이외에 아니었지.
그런데 시절이 바뀌어 87년 노동자 대투쟁때 노동자 대표가 되신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사실 중졸이시고, 그저 가진 교양이란 그저 신문의 한자독해 정도일 거다.
신문에서 무얼 얻으셨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다 동료였던 노가다꾼들에게 추대돼서 어설픈 노동조합 임원이 돼셨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는 남들에게 피해되지 않으려고 당신이 아는 지식 안에서 열심히 근로기준법을
공부하셨다...
노태우 시절이 좀 안정된 상태였던 89년...
어용노조를 깨기 위해 '복수노조 금지조항이라는 악법'에 맞서서 '악법은 악일 뿐이다'를
행동하신 어머니.
어머니의 경우에 지역구의 국회의원마저 외면했다. 복수노조 금지라는 실정법이 멀쩡하게
살아있었으니...
그때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옛날 옛적 국회의원이 올바른 경우란 참 들지... 그때
김동주라고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5공 청문회에서 5공 인사들을 추궁해가며 떴던 스타다)
어머님 일행을 위해서 도움을 주기 힘들다고 외면한 상황에서, 어쭈구리 노무현은 나름
'인권/노동' 변호사라고 알려졌는지 농성장소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양산 경찰서와
면담을 주선해줬다...
복수노조금지라는 실정법 위반의 싸움에서, 자기 지역구의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지랍넓게 경찰서에 갇혀있던 어머니와 다른 분들을 구하기
위해서 친절하고 자기일처럼 뛰었더라는 노무현의 기억...이 있다.
그 양산 촌구석의 (통도사가 근처에 있는 동네라오) 일에도 마다하지 않고 힘을 쓰려고 노력했던
그의 기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 개인적인 빚때문에 언제나 주시하던 사람인데, 응원하다 보니 이런 맘 들잖냐.
'너 조낸 "쫌 세속적인 기준"으로 잘 돼어서 힘이 커지고, 대신에 우리 같은 사람 도와줘라'
이렇게 되기를 바랬던 사람으로서 참으로 그의 행보는 참, 믿음감 만빵에 성취도 제로의...
그지 같았다.
3당 합당으로 인해서 거대 여당이 된 상황을 순응하면, 뭐 지역감정도 있고
여태까지 쌓아놓은 명성도 있고 하니 쉽게 그의 정치역정을 걸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적당히 국회의원도 더 하고... 이득도 좀 더 얻고... 한 자리도 얻고...
2000년 총선이었던가... 몇 해 전에 종로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되었던 그 사람이...
(이미 총선에, 부산 시장 선거에 한 3~4번 떨어졌지. 누구 말대로 돈 정말 많았나보다.
저런 삽질을 해대는 거 보면) 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다네...
거기다 제 낙선 동기 김정길을 물귀신처럼 끌어가면서 말이야. ㅋㅋㅋ... (ㅠ_ㅠ)
참내... 씨바...
'씨바, 여기는 왜 오는데. 왜 이 동네 와서 안되는 거 보여주면서, 내 속 뒤집는데!!!
내가 차라리 PK 아니면 그냥 부산/경남 사람 욕하고 말았겠는데 말이야...
왜 내 출신지역을 탓하게 만드는데... 씨바야... 미안시럽게 할래...
그래, 너 멋있는 거 알아. 그래도 꼭 이렇게까지 가다잡을 필요없잖아...
이번만큼은 걍 대충 당선되면 안돼?" 싶더라...
그런 마음에 부산 시민들에게 기대도 해보고 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지랄...
아니나 다를까. 멋진(??? !!!) 패배라고 하지만 패배를 하더구만.
그때에 그 좆같은 정형근 이따구는 당선되고... (정형근, 당선에 찬성하시는 분의 눈물로
쓴 수기 모집합니다... 보다는 요즘은 김용갑 당선 찬성이나 합천군수 당선 찬성분의 수기를
모집하고 싶다는... 한 10만원씩은 자비로 줄 수 있다는...)
그날 혼자서 소주 마시면서 (나 소주 못먹는다. -_-;) 무척이나 무척이나 괴로워하면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나 부산/경남 사람 안할래... 본적 파줘...'
그때 노무현을 패하게 만들었던 사람중의 하나가 허삼수였던가?
광주시민에게 총질한 인간과 관련된 개XX중의 하나인데... 그래도 그 인간이 당선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노무현은... 뭐라더라? 아, 이렇게 말했어.
"농부를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니미럴!!!
제길!!! 노가야!!!
"밭에 있는 흙들은, 여기에는 자갈들이 너무 많으니, 대충 딴 데 심으라고 하는데..."
노무현은 죽어라고 자갈들 많은 거기에다 씨를 심겠다고 부딪히더라...
나는 돌 밭 (이라고 생각했다)... 그 밭에 정말 있기 싫었다...
정략적이었고, 또 그것밖에 몰라서 국가지도자치고는 편협했는지는 몰라도 동서차별에
대해서 온 몸으로 부딪쳐 오더라. (쓰벌 정략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만큼 손해보면서
노력한 정치가 나와봐라. 대통령이 됐다는 결과때문에 과정을 폄하하지 말고, 그 과정때문에
결과를 평가하라고!!!)
니미럴... 여튼...
그런 정치인 조낸 불편하고도 또 불편했다.
부산 출신으로서 부산사람을 원망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드는 그 사람이 참으로 가슴을
후벼파더군.
그러고...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열정과, 또한 자신의 단점을 얘기하는데 난 정말
'아... 그래. 거기까지는 못가겠지만 이만큼은 가겠구나...' 싶더라...
그랬다...
생각해보면 '옳은 길을 위해서 눈 앞에 보장된 나의 이익을 포기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과연 당당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저 물음에 당당한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 큰 진보가 아닐까.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해 '세상은 약삭빠르게 살면 돼'라는 진리를 공유하던 시절에서 조금씩 탈피한다는
그 희망.
또한 그 지랄 같은 학벌 (연대출신인 나도 그럭저럭 기득권자인 듯. 아닌가?) 차별도
무시해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희망.
'노무현이 당선 되면 이민가겠다'는 사람도 꽤 있었나봐. 이회창이 당선되면 이민가겠다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2002년 내내...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했지만,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 누구도 희망을 얘기하지 않았지.
그래. 13년 동안 정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꿈이, '이상적일지는 몰라도 현실적이지는
않다'라고 생각했던 그 꿈이... 이루어졌다.
딴지일보가 한, 2002년 12월 19일 밤에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환성을 질렀던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과 꿈이 일치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정말...
꿈이란...
꾸어볼 만한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