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sh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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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갑자사화와 연산군식의 개혁

2003.01.14 00:14

RanomA 조회 수:2297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예송논쟁 얘기의 조회수를 가만히 보면 상편에

비해서 중,하편이 떨어지더군요. 상편 읽고 재미없으신 분이 많았던

모양이군요.

오늘은 TV 드라마 사극에서 장희빈 얘기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인 연산군의 갑자사화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임용한

씨가 지은 '조선국왕 이야기 2'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했고, 저도

공감하는 바가 컸기에 그 시각에 따라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드라마와 야사에서 보면 연산군이 처음에는 비교적 총명하고 성군

까지는 못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임금이 될 수 있었는데 무오사화를

계기로 포악해지고, 결국 어머니 폐비윤씨의 피묻은 적삼을 보고 분노의

폭주를 하게 되어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연 연산군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느냐가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바이죠.

결론을 말하자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슬픔과 분노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게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말안듣는 신하들을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숙청하고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는

게 맞다는 거죠.

즉위 초부터 연산은 많은 신하, 유생들과 잦은 다툼을 벌이는데 연산이

항상 하는 얘기는 그것이었습니다.

"너희들이 위를 깔보고 능멸하려고 한다."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은 굉장히 모범적인 국왕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만 그런 평판을 얻기 위해서 그는 자기 마음대로 운신의 폭을

가질 수가 없었고, 항상 신하들의 잔소리와 반대로 인해서 자기의 뜻을

숱하게 굽혀야 했습니다. 조선시대 왕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왕 마음대로 행동하는 경우는 정상적인 경우에는 무척이나 드뭅니다.

명나라 황제처럼 직속군사부대인 환관들의 세력도 드물고 (신용문객잔을

보면 내시의 무공이 장난아닌데 과장은 있을지라도 그들의 무술실력은

뛰어났었고, 그로 인해서 마음에 안드는 신하는 언제든지 제거해버릴 수

있는 권력을 황제는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일본의 막부처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권력이 아니라 문치주의와 절차에 따른 나라였기

때문에 조선의 왕은 언제나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던 거죠.

그런 아버지의 연약한 모습과 좌절하는 모습(야사에 따르면 말년의

성종은 하얀 병풍을 빨갛게 물들일 정도로 피를 토하도록 술을

마셨습니다.)에 연산군은 전대에 없는 강한 위기의식을 가졌던 거죠.

더군다나 무오사화에서 밝혀졌듯이 신하들은 세조의 자손의 정통성에

의문을 갖고 부정하고 있었기에 연산군은 더욱더 분노하고 있었죠.

그러한 상황을 자기의 뜻대로 상명하복, 임금의 말은 절대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의 거대한 음모를 계획합니다.

사극을 보면 연산군이 전혀 어머니의 죽음을 몰랐다가 피묻은 적삼을

보고서 비로소 알게 되고 분노의 폭주를 하게 되었다가 주류를 이룹니다.

최근의 '왕과 비'는 그렇지는 않더군요. 뭐 그것도 결국 그 드라마도

어머니의 복수가 주내용이었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실제로 실록을 뒤져보면 연산군은 즉위 초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옛사람들은 사람들이 죽으면 그 사람의 생애를 기록한

행장을 만드는데 성종의 행장에 '누구누구의 딸 윤씨를 왕비로 맞아

들였다'라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행장을 만들던 즉위초기 그 부분을

읽고 맙니다. 하지만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그저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침묵했고, 어머니 기일마다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다 정도이고, 외삼촌들을 우대해줬다 이런 정도의 얘기만

나옵니다. 즉 갑자사화의 분노는 갑작스런 분노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날랐던 이세좌도 한 번에 죽이지 않았고,

갑자사화의 얘기도 간격을 두어가면서 일을 처리하는 것도 그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이세좌가 처음에 연산군에게 당한 것은 술자리에서 임금의

술을 쏟았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술을 못마시던

이세좌는 얼마 못먹고 취한 상태에서 연산이 억지로 권하는 술을 쏟고

만 거죠. 그리고 연산은 그걸 가지고 트집을 잡아 귀양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다시 화해를 하고는 이세좌를 불러들였다가 다시 트집을 잡아서

귀양을 보냈다가 폐비윤씨의 얘기를 꺼내어 죽여버리죠. 그런 후에

이세좌의 집에 드나든 사람들을 하나씩 둘씩 죽이죠. 대신들은 연산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를 처음엔 짐작을 못했기 때문에 왕의 트집을 받아

주면서 적절한 선에서 무마하는 선에서 끝내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연산이 마지막으로 대신들에게 던진 말은 그것이었습니다. "폐비윤씨를

죽이는 논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조사하라"였죠. 하지만 갑자사화

에서 죽은 이들의 면면을 보면 폐비윤씨와 관련이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뭐 연산이 분노로 이성을 잃었다고 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처음에 말했듯이,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자기에게 대드는 신하들을

길들인다가 목적인 셈이었죠.

또 연산이 분노를 느낀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니라 어머니가 죄가

없는데도, 죽을 이유가 없는데도 죽었다라는 그 이유에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갑자사화에서 연산군이 신하들에게 자주 써먹는

명제가 있습니다.

"성종은 명군이셨다." 이 말은 신하들이 연산군에게 대들 때마다

신하들을 존중했던 성종을 본받으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죠. 하지만

연산군은 이 말을 "성종은 명군이었다. 그런데 죄없는 내 어머니가 폐출

되고 죽은 것은, 항상 임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고 매일 잔소리와

방해를 해대는 너희 신하들이 잘못해서였다. 결국 너희들의 그런 행동은

임금을 올바르게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고,

임금을 우습게 하는 데 있다." 라는 내용이 됩니다.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통렬한 개혁"이라고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조선의 정치사회를 뒤바꾸는 행동이라는 거죠.

갑자사화가 끝난 후에 연산군은 자기 맘대로 일을 합니다. 흔히들 얘기

하는 흥청망청한 세상이었죠. 하지만 실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백성들

에게는 그다지 전대의 상황과 비교해서 나빠진 것은 없습니다.

객관적인 상황을 보면 분명 백성들의 삶이 나빠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건

연산 혼자의 책임이 아니라 대신들과 권문세족의 횡포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백성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는 대신들을 숙청하는

연산을 두둔했는지도 모르죠. 연산이 자신의 몰락을 재촉한 위험한 행동

중의 하나가 바로 금표정책이었는데요, 경기도 일대의 대신들의 땅을

빼앗아 자기의 땅으로 만든다는 표식이 금표였는데, 이는 대신들의

크나큰 반발이 예상되는 행동이었지만 워낙 기세등등한 연산의 시대였기

때문에 속으로 삭히고 있었던 것뿐이죠. 지금도 경기도 지방을 보면

곳곳에 옛 대신들의 무덤과 정자, 비석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의

목적 외에도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도 해서 백성들의

땅을 수탈하는 데에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했던 연산군이지만 얼마 후부터는 서서히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화끈하게 쓸어버리는 것은 좋지만 자신을 지지할

대안세력을 키우지 못했었기 때문이죠. 갑자사화에서 사람들을 숙청할

때 연산이 즐겨했던 방식이 자신의 신임이 가득하다고 신하들을 착각하게

한 다음에 전격적으로 배신의 숙청을 자행해버렸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있기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에 막상 자신의 지지세력을

키우려고 하더라도 성공할 수가 없었던 거죠.

박원종, 유자광, 구순정 같은 중종반정의 제 1등 공신들도 겉으로 보면

전혀 반정을 꾀할 이유가 없어보일 만큼 연산과 가까운 신하들이었지만

그들은 언제 배신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었고, 결국

반정에 가담하게 되는 거죠. 연산은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재편한 칼이

결국 자기에게 되돌아오게 되어버린 결과를 낳았던 거죠.

연산은 단종 이후로 처음으로 궁궐에서 태어났을 만큼 (세종,문종,세조,

예종, 성종 모두가 아버지가 왕이나 세자가 아니었을 때 태어났죠) 부유

하고 귀하게 받을어졌기 때문에 철없는 재벌 2세처럼 고집세고, 편협한

시각을 가졌었기 때문에 조선의 정치구조와 권력이 어디서 나오는 지를

제대로 파악못했었던 겁니다. 왜 아버지 성종이 그토록 수모와 좌절을

겪어가면서 참았던 이유를 몰랐던 거죠.

결국 그것이 연산의 파멸을 가져오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