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sh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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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의 꿈...

2003.01.13 10:10

RanomA 조회 수:1146

다른 게시판에서도 썼던 글이지만서두...


옛날에 내가 이런 말을 썼구나... 싶다...

"낙숫물도 바위를 뚫는다. 하물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너무 쉬운 거 아닌가..."

참 멋있는 말인데 기억이 가물거린다... 신화가 너무 오래 돼서 꿈으로 생각했나.



난 노빠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그때였을 거다... 그 전까지는 호감 가득한 정치인이었지...

그러니까... 그때... 89년... 어머니의 투쟁때...


87년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 뉴스에서 데모하던 학생들은 모두 탱크에 깔려 죽어야 돼'라는

생각을 하셨던 부모님들이나, 그대로 영향을 받았던 나나...

모두들 그저 평범하게(-_-) 반공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사람들 이외에 아니었지.



그런데 시절이 바뀌어 87년 노동자 대투쟁때 노동자 대표가 되신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사실 중졸이시고, 그저 가진 교양이란 그저 신문의 한자독해 정도일 거다.

신문에서 무얼 얻으셨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다 동료였던 노가다꾼들에게 추대돼서 어설픈 노동조합 임원이 돼셨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는 남들에게 피해되지 않으려고 당신이 아는 지식 안에서 열심히 근로기준법을

공부하셨다...



노태우 시절이 좀 안정된 상태였던 89년...

어용노조를 깨기 위해 '복수노조 금지조항이라는 악법'에 맞서서 '악법은 악일 뿐이다'를

행동하신 어머니.



어머니의 경우에 지역구의 국회의원마저 외면했다. 복수노조 금지라는 실정법이 멀쩡하게

살아있었으니...

그때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옛날 옛적 국회의원이 올바른 경우란 참 들지... 그때

김동주라고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5공 청문회에서 5공 인사들을 추궁해가며 떴던 스타다)

어머님 일행을 위해서 도움을 주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나름 '인권/노동' 변호사라고

알려졌던 노무현이 농성장소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양산 경찰서와 면담을

주선해줬으니...

복수노조금지라는 실정법 위반의 싸움에서 자기 지역구의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지랍넓게 경찰서에 갇혀있던 어머니와 다른 분들을 구하기

위해서 친절하고 자기일처럼 뛰었더라는 노무현의 기억...



그 양산 촌구석의 (통도사 아시오?) 일에도 마다하지 않고 힘을 쓰려고 노력했던

그의 기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 개인적인 빚때문에 언제나 주시하던 사람이지만, "쫌 세속적인 기준"으로 잘 되기를

바랬던 사람으로서 참으로 그의 행보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3당 합당으로 인해서

거대 여당이 된 상황을 순응하면, 뭐 지역감정도 있고 여태까지 쌓아놓은 명성도 있고

하니 쉽게 그의 정치역정을 걸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정말 미련하게 말도 안되는 상황을 타개해보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부산 시민들에게 기대도 해보고 했으나 결과는

참담하더군.


허삼수였던가? 광주시민에게 총질한 인간중의 하나인데... 그래도 노무현은... 뭐라더라?

농부를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제길!!!

밭에 있는 흙들은 저 자갈들이 너무 많으니 그냥 딴 데 심으라고 하는데... 죽어라고

부딪치데.

불편하고도 또 불편했다. 부산 출신으로서 부산사람을 원망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드는 그 사람이 참으로 가슴을 후벼파더군.

뭐더라...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놀랐던 게... 뭐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이 서로 반목

하는 거... 그건 뭐 지역감정이려니 (이건 뭐 계속 들어왔던 얘기이니 심각성에 비해서

위기감의 감도는 만성화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했는데... 뭐 그러려니 그랬어.


근데 말이야...

경상도 사람이 아닌 사람들, 서울 혹은 타지역 사람들이 '(전)나도 사람들'이라면서

전라도 사람들 싫어하는 거.

'전라도 인간은 어쩌고 저쩌고...'


이건 말이야... 정말 지역'감정'이 아니라 지역'차별'이었단 말이지. 뭐 지역차별

현상에서는 나도 기득권자라면 기득권자이지만, 정말 이처럼 좆같고 지랄 같은

현실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수밖에 없더구만.


그런데 2000년 총선이었던가... 몇 해 전에 종로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되었던 그 사람이...

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다네... 김정길을 물귀신처럼 끌어가면서 말이야.

참내...

'너 멋있는 거 알아. 그래도 꼭 이럴 필요없잖아.' 싶더구만.

아니나 다를까. 멋진 패배라고 하지만 패배를 하더구만. 그리고 그 좆같은 정형근

이따구는 당선되고... 그날 혼자서 소주 마시면서 (나 소주 못먹는다. -_-;)

무척이나 무척이나 괴로워하면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나 부산/경남 사람 안할래... 본적 파줘...'

밭... 그 밭에 정말 있기 싫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옳은 길을 위해서 눈 앞에 보장된 나의 이익을 포기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과연 당당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저 물음에 당당한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 큰 진보가 아닐까.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해 '세상은 약삭빠르게 살면 돼'라는 진리를 공유하던 시절에서 조금씩 탈피한다는

그 희망.

또한 그 지랄 같은 학벌 (연대출신인 나도 그럭저럭 기득권자인 듯. 아닌가?) 차별도

무시해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희망.

'노무현이 당선 되면 이민가겠다'는 사람도 꽤 있었나봐. 이회창이 당선되면 이민가겠다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2002년 내내...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했지만,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 누구도 희망을 얘기하지 않았지.

그래. 13년 동안 정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꿈이, '이상적일지는 몰라도

현실적이지는 않다'라고 생각했던 그 꿈이...

이루어졌다.

딴지일보가 한, 2002년 12월 19일 밤에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환성을 질렀던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과 꿈이 일치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정말...

꿈이란...

꾸어볼 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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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9년 5월 29일 한겨레 1면 광고 file RanomA 2009.05.28 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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