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팍에서 글을 읽다 보니 우희진이 농촌 드라마에 나온다면서 설왕 설래가 있었다. 드라마 '느낌'의 히로인이 이제는 시골


아주머니가 되었다면서, 왠지 농촌 드라마 캐릭터들 비하성 뉘앙스의 글까지 난무했는데... 그 글을 보다 문득 생각난 게


조민수...


그리고 드라마 욕망의 문...


http://suwon.kbs.co.kr/drama/ds_detail.html?seq_no=35

정한용이 주인공인 드라마인데, 맨 첫 장면에 허옇게 샌 머리의 노인으로 나오는 거 보면서 어린 마음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어머니 왈, '더 이상 노인역으로 대역을 쓸 필요 없겠네' 하시더군. 그 전만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살짝은 무리한) 분장을

안했던 거 같은데, 그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봤다. 아마 기술의 발전 덕분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이렇게 지지리도 가난한 집 안에서 태어난 똘똘한 정한용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야반도주해서...




쌀가게에 머슴으로 취직해서 허풍끼 많고 낭비벽이 있는 주인집 아들 (오욱철)을 제끼고 주인 영감에게 신임을 얻어서


마침내 쌀가게의 중요 지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주인집 아들이 중간에 아버지 재산 일부를 들고 튀는 일이 있는데,


정한용은 그걸 보면서도 모른 척해준다. 주인집 아들이 없는 동안에 그 자리를 더욱 더 확고하게 하려고.


나중에 돈 다 탕진한 주인집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정한용의 자리는 탄탄해져 있었다.

그래도 아들이다 보니 일정 정도 물려주고, 결국 정한용과 동업해서 사업을 한다. 일꾼이 파트너가 된 셈이지. 그리고 전쟁 특수,

건설 특수 등을 타고 대기업으로 크게 된다.




뭐 나중에 돌이켜보니 거의 정주영 얘기가 모델이 된 거 같더군.





25년 전의 백인철, 정한용, 오욱철이다.


 개인적으로 오욱철을 이 드라마로 처음 알게 됐다. 나중에 대박친 건 종합병원에서의 독종 선배 의사로 나왔을 때였지 싶다.


'욕망의 문'과 '종합병원' 사이에는 나한일과 함께 재계의 무서운 아이들 얘기를 그렸던 '훠어이 훠어이'에 출연했던 게 기억난다.


 백인철은 정부 쪽 (중정이나 이쪽?) 관계자 역할이었던 거 같은데 정확히는 잘 기억 안난다.





이 드라마를 새삼 꺼낸 이유였던, 정한용 옆에 있는 부인 역의 조민수. 김동인의 소설 '광화사'를 원작으로 한 TV 문학관 '광화사'에서


눈먼 소녀 역으로 주목받았다고 하는데, 이규형 감독의 책에서 조민수 얘기가 나왔지. 잡지에서 보고는 신선한 마스크라고 자신의


첫 영화 '블루 스케치'에 캐스팅했는데 당돌하고 발랄한 아가씨였다고 써놨더라. 그 영화에서 상대 주인공으로는 레슬링 선수의


아들로 탄탄한 몸매와 반항아적인 눈빛의 천호진이었다지. ㅎㅎㅎ...

여튼...





조민수는 저 유명한 화장품 '드 봉'의 '미네르바' 모델이었을 때만 해도 도회적이고 아름다운 여자 캐릭터였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정한용의 동네 처자이자 부인 역을 맡아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모습을 연기한다. 이게 너무 인상에 강하게 박혀서였을까.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 출연하면서 더 이상 도회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져버린다.

이 드라마에서 정한용의 부인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가난한 집안의 남자인 정한용이 넘볼 수 없었던 귀한 집의 딸,

그래서 실패한 첫사랑(김수연)의 존재였다.

 

당시만 해도 햇병아리 조민수보다는 김수연이 더 비중이 높아보였다. 뻔한 전개이겠지만, 고귀한 집안의 김수연은 결국 불행한


결혼으로 이혼하게 되고, 그 틈에 성공한 정한용과의 사랑에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그건 불륜이었고, 또한 첩의 형태이기도 했으니


자신이 커온 배경과 교육받아온 것에서는 용납이 안되는 사랑이었다.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정한용의 사랑 역시 과거와 현재의 신분 교체에 따른 반작용과,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 여자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또는 그 시대


남자들의 정복욕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한 마디로 뒤틀리고 서로 상처주고 괴로운 사랑의 모습이랄까.


김수연이 늙어서 정신적인 문제로 병원에 입원하는데 의사의 진단이 '상사병'으로 나온다. 불륜의 결과로 태어났다고 자책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는 아들이 의사에게 '말도 안된다, 저 나이에 무슨 사랑이냐' 이러니 의사가 '사랑에는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불륜 관계를 저주했지만 그래도 그 바탕에 있는 사랑을 떨치지 못한 가엾은 여자 역할인 거지. 그리고 조민수는


정실이었지만 남편의 진짜 사랑을 얻지 못한 부인으로 화도 내고, 싸우고, 떠나보려고도 했지만 역시 그 곁에서 억척스럽고 모질게


살아나가는 모습이었고.




정한용의 여동생의 아역으로 신은경이 잠깐 출연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신은경이 스타가 된 다음에 (마지막 승부보다는


종합병원이라고 봐야겠지?) 그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며 나왔을 때 비로소 알게 됐다.


하지만 그 여동생의 성인역은 다른 배우가 했는데 그 뒤로 나온 작품이 기억이 잘 안나기는 한다. 다만 그 캐릭터는 6.25 전에 좌익


활동을 하다 전쟁 당시 인민군의 행태에 회의를 느끼고 전향했지만, 한 번 찍혀버린 낙인으로 박정희 시절에 조카와 (김수연과


정한용의 아들) 함께 시국사범으로 잡혀들어가기도 하며, 자본주의 사회와 속물의 대표격인 오빠를 늘 까댄다. 그래서 조카와


더 죽이 잘 맞았는지도.


아들 역시 사회 비판적인 운동권이었는데, 부인을 연탄가스 사고로 잃어버리면서 정한용에게 질책받는다. 배웠다는 놈이 그거 하나


조심하지 못했다고.


아, 오욱철이 연기한 주인집 아들은 나중에 정한용과의 동업을 분리해서 사업하면서 그럭저럭 잘 해나갔는데 (망나니였는 줄

알았는데 영어랑 인맥 쌓기는 제법 잘하는 캐릭터) 5.16 때 쿠데타 세력에 대한 승부수로 전재산 국가헌납 후에 다시 되돌려받는


쇼를 펼치기도 한다. 그러다 대연각 화재로 아들이 죽는 설정에 전 재산을 진짜로 국가에 헌납하는 게 마지막 기억이다.


이 드라마가 실제 인물의 얘기를 엮어 넣다보니 당시의 시국 얘기가 좀 나온다. 정한용이 회고를 하면 나레이터가 몇 가지 얘기를

던지는 스타일인데, 아직 5공이던 시절 나레이터가 과거 시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 정한용이 옹호하는 식으로

줄타기를 했던 거 같다. 뭐 본질적으로는 재벌과 정부 옹호하고, 가끔 양념삼아 비판을 넣었던 거겠지.


여튼 그거 보면서 박정희도 부정선거 했구나 (3선 개헌을 위해서 치른 총선이 이승만 시절과 동급의 부정선거였대나)라면서 알게


됐다는... (89년 전까지 나는 충실한 반공소년이다니깐. 한겨레에 물들지만 않았어도. ㅋㅋㅋ) 79년 총선에는 야당 득표율이 사상


처음으로 여당을 넘어섰다는 나레이터의 말에 정한용이 그래도 의석은 공화당이 많았다라고 하기도 하고 (첨에는 88년의


통일민주당(득표율 2위), 평화민주당(의석수 2위) 케이스인 줄로 생각했는데 유정회(대통령이 국회의원 1/3을 임명하는)가


있었다는 거 알고 나서는 뭥미? 공화당 대 참패네 이랬...)

뭐 이런 드라마도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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