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게 된 이후, 몇 번의 혼란기를

딛고 5명의 현명한 황제를 통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당대에는 '황금기', 후세에는

'오현제시대'라고 일컫는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가 그들인데 아우렐리우스까지

다들 현명하고 공정한 정치를 집행하며 로마를 건실하게 만들면서, 혈연에 구애받지

않고 황제 자리에 가장 합당한 인재를 구해서 그 전성기를 이어가게 했는데...

그 오현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이라는 책을 남기면서

철학자 황제이며 (플라톤이 꿈꿔 마지 않던 철인정치!!!) 언제나 성실하고 진지하게

국가를 위해 일한 그 황제...

'그런데 어째서 콤모두스라는 부덕한 아들에게 제위를 넘겨주면서 로마제국의 쇠망을

가져왔는가... 말이 안된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 그래 사실은 다른 훌륭한

인재에게 제위를 넘겨주려고 했었으나 콤모두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억지로 제위에

오른 것이 아닐까...'

그 생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얘기를 다룬 영화가 글래디에이터라고 한다. 영화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훌륭한 장군 막시무스에게 제위를 넘겨주려 했으나 콤모두스가

아버지를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후, 막시무스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열렬한 팬인 나로서는 과연 그때의 진짜 역사는

어땠는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는데, 10권에서 그 얘기가 나오기를 기대했건만, 왠 걸...

갑자기 로마의 인프라 얘기만 나오는 바람에 한숨을 쉬면서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나

했었지.

그리고 드디어 나온 11권 '종말의 시작'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얘기가 시작되는데...

막시무스의 모델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막시미아누스라고 게르만/도나우쪽의 전투에

참여했던 능력있는 장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실제이고, 나머지는 다 허구라는데...

아우렐리우스가 전임 4현제들과는 달리 아들에게 제위를 넘겨준 건, 우스운 말이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기때문이었다. 전임 4현제들은 넘겨주고 싶어도 받을 아들이

없었기에 훌륭한 인재를 심사숙고해서 고른 후 양자로 삼아서 제위를 넘겨주었으나,

아우렐리우스는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 없었다. 만약 훌륭한 뜻으로 다른 능력

있는 (막시미아누스처럼) 사람에게 제위를 넘겨줬다면? 시오노 나나미는 그 아들만큼

반란의 주모자로 추대되기 좋은 사람이 없으며, 언제나 정정은 불안했을 것이며, 국가

전체의 인재를 소모시켜버리는 (상대편은 죽어야 하는) 내란을 피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아우렐리우스가 그런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콤모두스는 어렸을 때부터 차기황제로

내정되었고, 그에 따라 황제의 권한과 지위를 하나 하나씩 승계받아갔으며, 황제가

되기 전까지 특별한 오류가 없었기때문에 영화와 같이 아우렐리우스가 막시미아누스를

황제로 삼으려는 그런 징후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콤모두스가 후에

실정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평판이 나빠지면서 그런 얘기가 나왔을 뿐, 제위 계승의

시점에서는 어디에도 그런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기때문에 영화는 필연적으로 허구로 가득차게 됐다면서 몇몇 사항을 얘기하는데...

1.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은 허약한 몸으로 힘든 전방에서 오랜 동안이나 혹사하면서

얻은 병으로 예측된 자연스러운 거지, 콤모두스의 살해가 개입될 것이 없었다.

2. 영화에서 막시무스가 승리를 거둔 후에, 황제가 소원이 없냐고 물었을 때에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했는데, 평생을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황제의 할 일을 다 한

아우렐리우스로서는, 당대 로마 엘리트들이 지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도리에 맞지

않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무책임한 발언으로 받아들였을 것도 하나의 증거라고

한다.

3. 영화에서 콤모두스가 황제에 오른 후 충성을 맹세하라고 했을 때에 막시무스가

거부하는 바람에 그와 그 가족에게 죽음이 내려졌으나, 실제로 막시미아누스라는

원래 인물은 콤모두스가 제위에 오른지 6년 후에 집정관에까지 올랐다. 즉 충성

맹세를 하고 살아남았다는 것.

4.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누나는 픽션에서 필요한 여주인공이었을 뿐,

실제로는 콤모두스가 황제에 오른지 2년 뒤에 자신의 위치를 위해 황제 암살음모를

꾀했다가 죽음을 맞았다. 즉 콤모두스가 죽을 시점에는 그녀는 이미 없었던 것.

오히려 콤모두스의 인간성을 변화시킨 건 바로 그 현숙해보이는 누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암살음모라는 것.

5. 콤모두스는 프로검투사들과 시합하는 것이 취미였을 정도로 검을 잘 다뤘지만,

실제로 그가 죽은 곳은 황궁 안의 욕실이었다...

대략 이 정도로 영화와 실제의 차이점을 얘기해주고 있다. 글레디에이터를 보면서

가졌던 그 많은 의문점들이 해소됐다고나 할까. 막시무스의 모델이 되는 인물은

있지만, 모델일 뿐 얘기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궁금증이 풀려서 속이 시원했다. ^_^

p.s. 막시무스에게 협력하는 원로원 의원의 이름이 기억나는가? 그라쿠스다.

공화정 시기에 민중들을 위해서 급진적인 정책을 펴려다가 실패하고 반역도로

몰린 그라쿠스 형제의 이미지는 '스파르타쿠스'에서 반란 노예들을 옹호하는

역할로 차용되었었는데, 글레디에이터도 마찬가지인 듯. 실제로 그라쿠스의

핏줄은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을 위하는 대표격으로 강렬하게 남아있어서인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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