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수가 미적 감각이 부족하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옷입는 것이라든지, 스타일이라든지

면에서 확실히 부족하다. 음악을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멜로디 정도만 느끼지, 악기의

연주가 어떻다든지 보컬이 잘 부르는지 못부르는지에 대한 구별이 많이 부족하다.

오죽하면 10년 전의 '하여가'에 이렇게 다양한 락적인 코드가 숨겨져있는가, 기타 솔로가

이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이제야 알게 됐으니 말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만족스럽게 잘 찍었다는 느낌을 갖는 게 얼마나 드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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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께서 예전에 쓴 글중에 대략 이런 내용의 글이 있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답게 유럽의 각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사실. 아무리 대단하고 위대한 작품이라고

들었던 거라도 자신이 봤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거다. 그냥 크구나, 잘 그렸구나

정도가 좋은 평이고, 나머지는 이해가 안되는 것은 둘째치고 느낌조차 별로 없다는 거였다.

결국 결론은 주입식의 입시위주 교육에 찌들은 우리네 감수성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였는데,
 
그걸 비유해서 던진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 이건 마치 언어와 같다는 거란다.

언어를 배울 때 어떤가. 어렸을 때에는 말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또 외국어도 노출만 잘

되어 있으면 쉽게 배우지만, 반대로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정말 엄청난 노력이 아니면 잘

할 수가 없다는 것. 그래도 Native가 느끼는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극단적인 예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늑대에게서 키워졌던 아이들이 인간세계로 다시 내려

왔을 때에 결국 말을 못배웠다는 얘기도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거란다. 어렸을 때부터 그러한 아름다움을

눈과 귀가 자주 접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네는 어렸을 때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고 구별하고 분간하는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하고, 그저 외우는 존재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에 미술작품을 보고, 음악작품을 들어도 무엇인지 알기는 해도 느끼지 못한다라는

얘기였다.

확실히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사춘기때 감명깊게 읽었던 책과 영화가 나이들어서는 시들하듯이

어렸을 때 그런 걸 알지 못했다면 평생 가도 알기 어렵다는 것.

다른 사람들보다 둔한 감각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변명일 수는 있지만,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한다는 것, 그리고 그 느낌대로 표현한다는 것. 그게 나의 성장과정에서는 많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음악과 미술에는 젬병이라도 말의 아름다움을 알고 감동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것조차 없었으면 나는 얼마나 허접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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