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의 임기는 제 대학 시절과 거의 겹칩니다. 그래서 당시 내내 정권에 대해서 삐딱한 시각으로 바라봤는데, 가끔 인터넷에서 보면 시간이 꽤 지나서 그런지 제 기억과는 다르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물론 제 기억이 100% 정확할 수는 없지만, 요즘 세상에 그 시절 신문 기사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잖아요. ㅎ... 특히나 김영삼 정부 초기의 업적과 어마 무시한 지지율에 대한 인과관계나 시기가 막 뒤섞인 경우가 많더군요.

김영삼 정부 초기에 지지율(정확하게는 직무 수행에 대해 긍정이라는 평가의 여론 조사이겠지요)이 80~90%를 넘나든 건 사실입니다. 갤럽의 직무 수행 여론 조사에 따르면 긍정이라는 여론이 임기 첫 해의 첫 3분기는 71%, 83%, 83% 입니다.

김영삼 임기 업무수행 평가.png

 



그래프 보면 아시겠지만, 이후 4분기부터 떨어지기 시작해서 쭈욱 떨어지다 95년 4분기에서 96년 2분기까지 잠깐 반등했다가, 다시 계속 떨어집니다. 1.5년 정도는 50% 넘는 긍정 평가를 누렸지만 이후로는 다시는 50%를 넘지 못했던 거죠. 요 부분도 의외일 겁니다. 어떤 사람은 IMF 전까지는 계속 좋았던 거 아니냐고 할 정도이니.

여튼 그 초창기 80%대 지지 시기의 주요 업적은 93년 3월의 하나회 숙청, 93년 3~9월의 전방위적 부정부패 사정 및 공직자 재산 등록 제도 시행, 93년 8월의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발동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김영삼의 저 높은 인기의 원인 중 하나로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나 5.18 특별법 제정으로 인한 전두환/노태우 등의 반란자들을 잡아가둔,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로 꼽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 건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 시기입니다.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는 1995년 8월 15일인데 위의 그래프를 보면 1995년 2분기, 3분기의 긍정이라는 여론은 28%, 29% 밖에 되지 않습니다. 으아니? 왜???

사실 이때쯤에는 김영삼 특유의 깜짝 쇼는 약발이 다 한 지 오래였고, 1995년에는 발생한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 현장 가스 폭발 사건(4월 28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6월 29일), 제 1회 지방자치 선거에서의 참패(6월 27일) 등으로 민심이 매우 안좋았던 때이죠.

5.18 특별법 제정은 오래 전에 글썼던 것처럼 안한다고 뻗대다가, 각계각층의 반발과 헌법재판소의 불기소 취소 판결에 대한 예측이 있던 차에 자기의 92년 대선 자금 문제가 비화되니까 국면전환용으로 써먹었던 거라 비판적이지만 그래도 지지율을 반등은 시켜줬는지 41% 정도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나무위키를 보니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하는데, 일본애들이 차라리 자기네가 돈 댈 테니 일본으로 옮겨달라고 했다는 것에 대해서 김영삼이 빡쳐서 일본애들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김영삼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한 건 맞지만, 다른 사안에 대해서 한 얘기인 걸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철거는 8월 15일 광복절에 했는데, 김영삼의 저 발언은 중국의 장쩌민(강택민) 주석과의 회담인 11월 14일에 나온 얘기거든요. 이미 철거가 진행된 상태인데 저런 얘기가 나왔을까요. 당시 기사로 보면, 일본 총무청(현재는 우정성 등과 함께 총무성으로 합병) 장관인 에토 다카미라는 인간이, 식민지 시절에 좋은 일도 해줬다는 망언을 하는 바람에 한일 관계가 엄청 안좋았던 시절에 중국과 같이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면서 나온 말일 확률이 더 높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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